개정 선거법 통과를 축하하며
선거연령이 만 18세로 하향됐다. 제일 먼저, 이제껏 싸워온 청소년 사회 운동가들의 노고에 감사한다. 개정 선거법은 국회에서 쉽게 뚝딱 만들어낸 법이 아니다. 이 역사적인 개정 법안은 계속된 마찰이 있었음에도 버텨 온 운동가들의 목소리가 있었기 때문에 통과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아는 분이 있는데, 그가 그 졸렬한 악플들을 다 견디며 앞으로 나아간 모습이 기억에 오래 선명히 남는다.
먼저, 앞으로 수험생을 비롯한 만 18세 청소년들이 사회에 보다 적극적인 의견 표출의 길이 열렸다는 점에 격한 환호의 박수 보낸다.
이 뉴스를 보고 몇 년전 룸메이트가 생각났다. 내가 선거는 (한국나이) 19부터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래야 이 거지같은교육시스템이 구제될 기미라도 보일 것이라고. 그 친구, 원래부터 내 말에 사사건건 딴지를 걸었지만 유독 그날은 더 심하게 흥흥댔다. 19은 생각이 없다는 둥, 니가 그건 잘못생각하고 있다는 둥... 평소에도 너따위가 어떻게 서울대를 가냐는 식으로 말하던, 어떻게든 날 비웃고 싶어하던 친구라 갈등상황에 부딪혔을 때 매일을 대강대강 넘겼지만 이 이슈는 정말 나한테는 너무 중요한 거라, 열이 개 뻗쳤다. 다같이 수능때문에 그 개고생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 얼토당토 않은 말이 나오는 건가.
선거법 하향조정에 대해 반대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 대부분이 아마 저 친구와 비슷한 입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19 청소년의 미성숙함에 대한 불완전한 확신.
미성숙이라는 말은 성숙이라는 안티테제를 동반하는 개념이다. 성숙이 없다면 미성숙도 없다. 그렇다면 미성숙한 자에게투표권을 주지 않는다는 말은 성숙이 보장됐을 때 투표권을 줘야한다는 말과 동일하다.
아니 안 그러고 있잖아요. 지금 투표권이 주어지는 어른들에 '비해' 청소년들이 미성숙한가? 야 진짜 양심에 손얹고 이야기하자. 성숙이라는 개념은 선택에 대한 책임을 내포하는 개념인데, 우리나라 어른들 선택도, 책임도 안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투표율은 참담하게 낮고, 모든 인간은 선거날에만 주인이 됐다 그 후 다시 노예로 복귀한다는 말을 증명하고 싶어서안달이 난 건지 뭔지 뽑아놓고 나몰라라 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태반.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에 화내지 않는 인간들 다 공범이다. 그렇다면 딱히 지금도 성숙한 인간들에게 투표권이 돌아가는 것이 아닌데 그 연령이라는 것이 성숙의 무엇을 보장하길래 한 살 연령을 가지고 성숙과 미성숙의 경계를 나눌 수 있나.
그것보다는 사회의 짐을 떠 안는 정도에따라 선거권 유무가 갈리는 것이 자연스럽다. 선거라는 것은 대의제 사회에서 인간들이 사회의 악에 통감하는 바를 표현하는 행위다. 좋은 건 즐기면 되지만 나쁜 건 뜯어고쳐야 하니까, 누구라도 내세워야 한다. 근데 이 나쁜 건 사회에 어느정도 포함되는 자신만의 영역이 존재해야 제대로 공감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회의개 같은 점, 글로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널려있다. 나는 그 중에 아주 적은 부분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는아주 제대로 느꼈다. 바로 한국의 교육제도다. 그러나 이에 대한 분노는 해가 갈수록 옅어진다. 나는 재수를 할 때 정말 너무너무 좆같아서 꼭 내가 사회에 나가 뭐라도 해야지, 매일을 다짐했다. 그러나 나도 타인의 고통에 지나치게 둔감한, 못된 인간이라 딱 수능이 끝나자마자 그 다짐이 내 안에서 빠져나가는 걸 숨 쉬듯 느꼈다. 그 시점의 나에게 현재의 나는 타인이니까.
그러니 이 교육제도를 바꾸기 위해선 그들이 직접 해야한다. 뭐 물론 머리가 좀 더 크고 제도나 체제를 본격적으로 바꾸는것도 필요하지. 근데 우리 사회에 그럴 수 있는 사람이나 상황은 이미 충분히 많다. 그러나 그것은 진심으로 그 일에 대해말할 수 있는 사람과 상황이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타인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건 너무 많고 진부하고 시끄럽다. 사회적자본이 들어가는 일이니만큼 공동체의 의견제시가 필요한 건 맞지만 그게 당사자의 목소리보다 너무 크다. 솔직히 좀 닥치고 자리좀 양보했으면 좋겠다.
예전엔 어른들이 이 사회가 불합리하다고 느껴지면 니가 성공해서 바꾸라고 많이 했다. 근데 미친 그렇게 성장한 어른들이 지금 뭔가 제대로 바꾸고 있긴 하냐? 시도때도 없이 탁상공론이나 펼치고 있는데. 성공한 자와 당사자의 시차는 너무크다. 그 둘은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그 둘은 서로를 평생 완전히 공감할 수 없다. 성공한 나는 사회의 악에 고통받던 나를 영원히 기억할 수 없다. 때문에 우리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약자에게 당장 자리를 양보하고, 목소리를 내게 만들어야한다. 사회의 악에대한 우리의 개정의지는 그렇게 표현될 수 있다.
제발 당신과 같은 인생의 굴곡이 상대에게도 있을 거라 착각하지 마라. 쌍방 인생의 주파수는 그렇게 쉽게 공명하는 것이아니다. 그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꼰대되는 거지 뭐... 당신이 더 많이 가졌을수록, 그게 나이든 재산이든 명예든 권력이든, 사회를 위해 무게 없는 말을 자제하고 입을 닥치자. 그리고 귀를 열자. 당신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어떤 악에 의해 그 자리까지 올라간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