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읽기

매체와 메시지의 동질화 방향과 공멸의 가능성 점검

큐키🍪 2021. 7. 6. 11:08

매체와 메시지의 동질화 방향과 공멸의 가능성 점검

 

 

매체가 곧 메시지일 때 공멸이 찾아오는가? 이를 따져보기 위해서는 매체가 메시지다라는 매클루언의 동일성 테제가 보드리야르의 극단으로 치다를 때의 방향이 중요하다. 그 각각이 서로 동일해진 것이라면, 둘의 선행적 존재 양태는 독립적인가, 매체가 메시지를 포함했는가, 메시지가 매체를 포함했는가? 먼저 현실세계에서 메시지 없이 미디어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또한 본고는 가능세계의 논의를 따지지 않기 때문에 적어도 이곳에서 매체는 메시지에 독립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첫 번째 가정으로 매체는 메시지의 존재 하에 발생한 도구로서, 매체가 메시지 이외의 존재 가치가 있다면 매체가 메시지를 포함한다고 말할 수 있다. 메시지가 매체를 가능케 했을지라도, 매체는 메시지 이상의 기능을 함유하여 독창적인 의의를 가질 수 있다. 이 경우 보드리야르의 선언은 매체와 메시지의 동질화는 매체라는 토양을 파괴하여 메시지는 물론 메시지를 내포했던모체로서의 매체까지 생명력을 상실하게 만든다는 뜻이 된다. 만약 후자에 따라 메시지가 매체를 포함했던 것이라면, 매체는 메시지로야만 존재 의의가 있다. 그렇다면 보드리야르의 논지는 메시지가 매체에 의해 포섭됨으로써 메시지의 존재 의의가 상실된 것뿐만 아니라, 매체 역시 본래의 의무, 메시지로의 나아감이 좌절됨으로써 함몰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혹은 이 두 가지 회의적 종말론이 모두 그릇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매체가 메시지라는 명제를 수용한다는 전제에서, 합일로의 나아감에 하나의 실재가 부정되지 아니하고 새로운 존재 양식이 인정될 때 그러하다. 그렇다면 논제를 명확히 규명하기 위해서는 현재까지 매체와 메시지 사이의 상호작용과 전망을 모두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샬 매클루언은 이를 규명하는 데 있어 매체 자체의 작동 양태에 초점을 맞췄다. 종전의 인과성 논의를 부수며, 시간적 선후를 차치한 매클루언에게는 문화와 사회의 전체적인 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매체의 특질이 사회에 반영되는 작업은 도구로서의 매체가 그 지위를 넘어, 인간에 하극상을 벌이는, 즉 인간의 기능을 대체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매체는 메시지다는 말을 통해 인간의 감각을 연장시키는 매체의 기술적 측면에 조명을 비추었다. 콘텐츠에 우선하는 매체의 형식적 측면이 인간의 중추신경계의 외연으로 창발하자, 인간은 과연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철학적 물음이 제기되었다. 매체가 사회의 패턴과 인간의 감각 비율을 조작함으로써, 인간은 인간 본연으로 사고하지 않는다. 감각기관으로서 매체는 지각뿐만 아니라 판단과 인지에의 영향을 주며 개체로서의 인간을 매체적 집단사고의 일변으로 환원시킨다. 반드시 메시지가 프로파간다적으로 선명한 의미를 내포하거나, 암시적 기의가 집단세뇌를 시도하는 것만으로 시대의 변화를 설명할 수는 없다. 만약 그렇다면, 매체로서의 양피지가 이집트를 넘어 서방 유럽 전역에 수도원 생활을 확산시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기록하고 보존하라는 메시지가 그러한 문화를 창발한 것이 아니라, 양피지의 지속성과 문서화의 용이성이 원래의 문화권에서 담지한 메시지, 이교도의 상징체계를 이겨내고 전파력을 쟁취한 것이다. 돌을 매체로 사용하는 문화는 돌처럼 오래가는 전통과 보수를 숭상하고, 종이처럼 가볍고 널리 퍼지는 매체는 그와 같은 공간 편향적 문화를, 즉 굉장히 제국주의적인 확산을 이끌어 낸다. 매체와 문화·인간 간의 직접 접촉을 설명한 해럴드 이니스의 주장은 메시지의 존재감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따라서 매체와 메시지의 종속관계는 매체가 메시지 이외의 기능을 내포한 것으로, 시간적 선후를 차치함을 통해 도출할 수 있다.

 

공멸에의 진행을 분석하기 위하여, 매체와 메시지의 붕괴는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연원을 되짚어서 파괴의 역학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언어가 수명을 다함으로써 공백이 생기자, 그 자리를 사회의 매커니즘이 채웠다는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주장은 근대 정신의 파괴를 설명하였다. 천박한 문화산업은 진보에 대한 찬양가를 부르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대중 기만으로 나아갔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개인의 사적 욕구의 분출이 라디오 매체에 의해 권위적으로 제어되는 과정이 민주주의의 단계라고 말했다. 문화산업 내부의 유기체적 연결은 양화법칙에 순종하는 개인을 양산한다. 여기서 근대정신의 핵심인 계몽은 행동 준칙이 아니라 이념으로서 구성되며 이념은 행동 준칙과 다르게 집단적 대상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또 개인주의의 원리와도 다르다. 개인은 없고 문화 산업과 그 소비자층만 존재할 뿐이다. 문화산업은 정교한 재현을 통해 소비자층의 감각기관을 기이하게 연장시키고, 또 소비자층은 사고가 아닌 감지 능력만을 발휘하여 대체 가능한 규격품으로 탈바꿈한다. 문제는 소비자로 환산된 개인이 조작된 쾌락을 통해 본인의 거세를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망각은 또한 문화산업의 표준에 매몰되는 과정으로 기능한다. 근대의 진보적 메시지는 사라지고, 진보를 판매하는 매체만이 남았을 뿐이다. 하지만 매체는 마치 메시지로의 나아감을 시사함으로써 대중에게 기만적인 만족감을 선사한다. 앞의 논지와 이어보자면, 매체는 분명 메시지 이외의 기능을 내포하여 거대한 음모를 구사하나, 그 작동 방식을 메시지로의 진전으로 모사해 매체와 메시지의 동일성 추구로의 방향이 모순되는 두 가지를 모두 의미한다는, 양자적 결론이 도출된다.

 

그러나, 규격화된 문화산업이 모두의 사고를 앗아갔다고 단정하는 데에 벤야민은 동의하지 않았다. 벤야민은 예술의 영역에서 산업에의 순종을 타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았다. 벤야민은 대중문화의 산만화, 전시가치의 제의가치 압도, 예술의 정치화에서 전복적인 성향을 읽었고, 청중들이 비판적 사고를 가질 수 있는 모티브를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논의를 종합하면, 이전까지의 문화와 대중문화 사이에 단절이 있는 것은 분명하나 그 단절이 자기 폐쇄적인가, 혹은 새로운 비판적 사고를 창발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의견이 엇갈린다. 인간을 갉아먹는 전체주의적 사고는 인간 주체성에 대한 근대적 메시지를 교묘하게 침식시킨다. 반면 벤야민은 산만함에 대한 적응이 예술로 승화될 때, 비판적 사고가 창발된다는 주장으로 낙관을 설파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방식으로 예술이 대중을 동원할 수 있는 힘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그에 대한 구체적 논의는 버밍험 학파의 문화 이론을 통해 논할 수 있다. 스튜어트 홀은 프랑스 구조주의에서 출발하여, 언어 구조가 문화를 규정짓는 과정을 통해 문화를 우리가 실존하는 차원의 세계로 착륙시켰다. 그는 레이몬드 윌리엄스가 고급으로 일컬어진 문화를 일상적인 생활양식으로 전이시키고, 리처드 호가트가 노동자 계급의 하위문화를 공동체 문화를 보존한 데 가치를 발굴한 버밍험 학파의 계보를 이었다. 자연스럽게 홀 역시 엘리트주의를 배격하며 대중문화의 저항 가능성을 모색했다. 언어와 매체, 제도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탄생한 문화는 의식과 행위자에 구심점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문화는 주체로서의 의식을 규약하는 장()으로서, 엘리트 문화의 논리는 이에 따라, 하위문화에서 경험한 노동자 계급의 주체성을 지배할 수 없는 일종의 이탈한계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그는 매체의 반영이 아닌 구성 기능에 주목해 사회적 관습을 통과한 기호화 과정을 통해 매체가 새로운 실재를 만들어낸다는 창조적 동력을 지녔음을 주장한다.

 

매체는 기득권의 규칙 배열이 내포된 권력효과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수용자 입장에서도 독해될 기호를 남긴다는 점에서 대중의 능동적인 접근을 가능케 만든다. 여기서 롤랑 바르트가 이야기한 문화 언어학적 구조를 통하여 커뮤니케이션의 의미가 형성되는 과정, 즉 코딩을 사용한 저항을 실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기의의 두 층위에서 내포는 가치판단을 수용함으로써, 지배적인 관습으로서의 헤게모니와 도전 세력으로서의 헤게모니 간의 충돌을 야기하고 이는 곧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는 실천적 차원의 정치적 담론의 장으로 발전한다. 여기서 마르크스 주의와의 결절점은 계급으로의 환원이 아니라, 다원성에의 투신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중층적인 정체성의 문제가 혼재하며 공론장은 역동적으로 변화한다. 이는 SNS를 위시한 매체의 범람에서 경험적으로 증명된 바이다. 그렇다면 커뮤니케이션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을 통해 구성되는 것으로 디코딩(decoding) 될 수 있는데, 문제는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해석의 증대가 무한성을 띤다는 것이다. 현대 정보화 사회는 특히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을 통해 무한정 증식되는 주체의 기호화 작용이 나타난다. 이에 따라 각자 능동적인 자세로 의미를 생산하고 재해석하는 데 임하는데, 이때 기호마저도 관습적인 동의를 상실하게 된다면 그 존재가 사라진다는 위험에 처한다. 이는 매체가 기호화할 수 있는 대상이 남아있지 않게 되고, 기호의 공백은 곧 매체의 의의가 침식됨을 의미해 종래에는 함열을 일으키게 된다는 보드리야르의 선언으로 이어진다.

 

쟝 보드리야르는 매체 자신의 정의와 행위조차도 표정할 수 없는 파생실재적 성운 속에서 매체 자신의 실재 속으로의 함열과 매체와 실재의 함열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 성운 속에서 구별되었던 메시지의 경계는 매체의 연출을 통해 벌어진 정보의 소진, 시뮬라크르의 대체를 통해 으깨지는데, 이로써 매체는 메시지의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시 재현할 수 있는 실재를 상실하고 매개의 필요성이 상실된다는 의미에서 종말을 맞게 된다. 그러나 만약 매체의 다른 존재 양식을 인정할 때, 즉 탄생 직후의 기능과 대응되는 이름에의 집착을 버리고 그저 이름만 남겨둔 채 그 기능을 다른 것으로 대체한다면 매체는 매체로 남을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매체가 메시지 이외의 기능을 분명 내포했다는 출발에서 연유한다. 매체가 메시지 이후 등장했으나, 반드시 메시지 매개만을 수행하진 않았다는 점에서 우리는 매체의 잠재력을 엿보았다. 반면 보드리야르식의 비관은 매체의 지위를 여전히 대상에 국한한다는 한계를 지닌다. 매체는 오히려 전체 투시에 종말을 고한, 세계의 붕괴할 수 있는 니체의 파괴적 회의주의를 구현하기에, 건설적이다. 매체는 메시지 이외의 기능을 갖는 한편, 메시지로의 나아감을 자처하는 이중적인 방향을 구현한다. 보드리야르의 선언은 매체가 메시지 이외의 기능을 가질 때, 메시지에 천착하지 않고 스스로 세계를 창조하는 기능을 포기하지 않는 경우를 상정하지 않는다. 또한, 메시지로의 나아감을 달성했을 때 벌어지는 좌절에 대해서도 그가 제시한 매체의 조작적 진실의 존재를 부정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설명을 포섭하지 못한다. 보드리야르의 선언은 따라서 매체의 모순에 결착되어 있을 뿐, 매체와 메시지의 합일 이후에도 실존하는 매체와 메시지에 대해 고정된 본질에 집착하여 부정만을 반복하는 오토마톤에 불과하다. 매체와 메시지의 역동성을 전제한다면, 그가 정의한 본질 역시 유동적인 흐름에 해체될 수 있다. 여전히 매체는 실존한다. 심지어 모두가 매체를 이야기한다. 만약 대중에게 매체를 앗아간다면, 매체가 아닌 보드리야르 자신이 최후의 기호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렇다면 실존하는 매체를 무엇으로 대체할 것인가에 대한 책임 역시 보드리야르에게 돌아간다. 그러나 그는 오직 회의만을 던졌을 뿐, 어떤 언어도 제시하지 않았다. 만약 해체 이후의 대안이 없다면, 홀이나 벤야민의 저항에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데에 그친다면, 공멸을 인정하는 것은 현실적 필요를 간과하는 낭비에 불과하다.


 

참고문헌

 

 

스튜어트 홀, 임영호 역 (2008), 스튜어트 홀의 문화이론, 한나래.

장 보드리야르. 하태환 역 (2001).시뮬라시옹. 서울: 민음사.

발터 벤야민. 최성만 역 (2007).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사진의 작은 역사 외. 서울: .

테오도어 아도르노, 막스 호르크하이머. 김유동 역 (2001), 계몽의 변증법. 서울: 문학과지성사.

허버트 마셜 매클루언, 김상호 역, 2003, 미디어의 이해 인간의 확장, 커뮤니케이션북스.

해럴드 이니스, 이규호 역, 1951, 커뮤니케이션 편향, 커뮤니케이션북스.


너무 말을 세게 해서 성적 나올 때까지 쫄렸던 레포트다.

근데 또 성적이 엄청 늦게야 나왔다. 마감일에...

재수강한 거라 걍 A0 나왔는데 완전 만족한다.

저번학기도 그렇고 이번학기도 정말 듣고 있을 때는 '와 나 포스트 벤야민이다.' 하면서 들었는데 과제할 때 정말... 정말... 너무 힘들었엉 ㅠ 

 

영어 논문 읽는 것도 그렇고 쓸 페이퍼도 너무너무 많았음 ㅠㅠㅠ

후배들이 이걸 읽을까? 는 모르겠지만 도움이 되기 위하여 그 레포트들... 다 올릴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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