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읽기

나라는 인간한테 진절머리가 난다.

큐키🍪 2022. 11. 24. 00:36

https://youtu.be/dmAK9Rr8Ipc


빈지노가 처음 콘서트를 열었을 때 500명 남짓한 사람들이 홍대 클럽에 모였고 나는 그 중 하나였다. (사실관계 다를 수 있음)
나는 예나 지금이나 힙합하는 거 이해도 안 가고 남자가 힙합 좋아한다고 하면 친구로선 아무 상관 없지만 나랑 연애관계는 아니겠거니 한다. 그래도 빈지노는 어렸고 젊었고 그날 처음 노래를 들었는데도 앨범을 사고 싶게 만들었다. 지금 방 구석 어딘가에 처박혀 있는 빈지노의 초판 앨범. 24, 26.

나이로 제목을 짓는 건 왠지 모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쌍팔년도 감성이라 낮춰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지금 그 무엇도 욕하고 싶지 않다. 무엇 하나라도 욕하게 되면 가장 밑바닥에 있는 내가 더 못나질까봐... 일단 다 추켜세우면 나도 어영부영 절대값 밑으로는 안 떨어지지 않을까?

뭐 아무튼 빈지노도 어린 나에게 향수를 준다. 그가 2426일때 나는 아마 중학생. 지금 나는 26살의 끝자락. 엄마는 내 나이에 나를 낳았는데 나는 열 다섯에서 하나 나아진 거 없이 어영부영~ 지표면에서 헤엄~

내가 지금 우울증 호소인이 되려고 여태껏 그 많은 기회를 뿌리치고 이렇게 살아왔나. 아무래도 날씨 탓이 크다. 아무래도를 외치는 로스쿨 친구들과 한 수업에 20장 씩 나오는 속기와 그 밖의 여러 내 안의 말들, 무엇 하나 잘못 건드릴까봐 조심스러운 겨울철의 언어들...

나는 사람들이랑 있는 게 좋은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나보다도 혼자 있을 때 완전해지는 내가 싫어서 그런걸지도 모른다. 적당히 남한테 체면치레를 하고 인간구실을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 때 나 자신과도 적당한 거리두기가 가능하다. 그냥 우두커니 나를 바라보고 있을 때면 계속 열 다섯으로, 열 넷으로, 처음 옷장에 숨어든 아홉살로 돌아간다.

대성한 작가들은 이런 체념의 시기를 겪다가 극복하는 결말도 보여주곤 하던데, 나는 또 이런 사념을 나불대고 있다. 2425의 나는 정말 고요했는데, 26의 나는 소요뿐이다. 온통 소용돌이치는 일들... 반추했을 때 돌아갈 생각조차 들지 않는 건 후회가 없는 것뿐만이 아니라, 내 자신에 대한 기대가 아예 없어져서 그런걸지도 모른다. 그것보다 더 잘할 수 있었을까,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앞으로 또 비슷한 일이 닥치면 어떨까?

나라는 인간과 스물 여섯해, 진절머리가 난다. 안 그럴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뭐야. 사람은 누구든지 일주일에 세번 정도 보는 게 적당하다. 너무 빨리 소진되는 관계는 마음 속에 그을음만 남긴다. 아무리 감춰도 숨길 수 없는 살 타는 냄새, 요즘 이 철에는 그 고약한 냄새를 맡는게 취미인 사람들도 있다. 자의든 타의든 자주 대면하고, 또 계속 그렇게 살아왔으니 관성대로 코를 비집고 남의 상처 헤집는 작태...

다 외로워서 그렇다고 해봐야, 사람도 소모품이라서 나한테도 소모되고 그도 그에게 소모된다. 바꿔 끼워야 한다는 말이다. 최근에 환승연애가 난리였지만 나는 아직도 그 감성이 이해가 안 간다. 끝난 인연 마주할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완벽히 서로에게 소모되지 않았다는 증명 아닌가? 적당히 만나서 적당히 헤어질 수 있는 사람들... 내가 또 대체되는 것을 중계도 아니고 생눈으로 쳐다볼 수 있는 사람들.

그게 트렌드라면 그리고 그들이 행복하다면 나또한 마땅히 그렇게 되는 것이 신간 편할텐데, 진절머리가 나게도 변하는 건 없다. 빈지노도 이렇게 생각했을까? 세태에 침을 뱉거나 순응하거나 두 갈래 길이 있다면 나는 선택을 할 때가 온 걸까.

오늘 글은 맴도는 글이었구나, 나아지지 않는 삶에도 경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