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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인간관계 책을 읽든지 간에, 핵심으로 들어갈수록 ‘경청’의 중요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경청이란 왜 중요한가? 사람이 정말 못 이기게 싫은 감정이 ‘억울함’이기 때문이다. 악인은 악행으로 평가받아도 철면피로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도저히 자기가 하지 않은 일로 지탄을 받게 된다면, 그것은 한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억울함’은 오장육부를 태우는 맹독이다.
억울함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는다. 그 억울함이 정말 마땅한데서 비롯하는 경우도 있고, 스스로의 착각으로, 즉 진실로 그런 대접을 받는 것이 옳으나 메타인지의 오류로 ‘나는 이것보다는 대단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는데서 비롯하는 경우도 있다.
둘 중 뭐든 간에 사람은 이 생각으로 죽기도 한다.
많은 경우에 망자의 억울함을 달래주기 위한 사람들이 있다. 때문에 자살이라는 것은 최후변론으로 쓰인다.
하지만 자살은 더 이상 유효한 전략이 아니다.
최근에 억울하다 한 마디 말도 못하고 죽은 연예인이 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얼마나 많이 목격해왔나? 그 후에 뒤따르는 갈피 잃은 사죄와 죄책감... 얼마나 부질없고 우습나?
그래도 인간이기에, 적어도 그런 감정을 갖는 것이 최소한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우리 모두가 잠깐의 애도로 동지의식을 함양하는 때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순진했던 건지, 다들 요새 더 천박해지기로 마음먹은 것인지. 세상일이 그렇게 단순한 낭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고인의 조용한 죽음은 난제로 남아서, 결국에는 공방전이 되었다.
그리고 많은 콘텐츠에서 자살의 이유로 남은 사람을 욕하고 헐뜯고 있다. 그의 정당한 죗값이라면 응당 치러야지.
하지만 그들의 돌팔매질조차도 떠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타겟을 일갈하며 결국에는 자기 장삿속을 채우고 있었다...
떠난 사람이 그리워서, 그렇게 만든 사람이 미워서 울분에 찬 마음으로 그녀를 비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기 주머니를 배부르게 하는 목적이라면, 죽은 사람까지 굳이 들먹이면서 그래야 한다면, 그녀를 죽게 만든 자와 본질에 큰 차이가 있나? 정말 떳떳하게 당신들은 그녀를 이용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나?
‘죽기 전에 경청해주지’라는 말은 하지도 않겠다. 그냥 잠시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 어린 사람이 얼마나 억울하고 외로웠을까. 혼자서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나? 그 감정을 안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는다면, 그 작자를 욕할 수는 있어도 고인을 논할 때 돈 얘기는 안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녀의 이야기가 드러날 때마다 목구멍에서 비집고 나오는 말이 있다. 죽지말지, 한마디라도 하지.
왜 못 말했는지 너무 잘 안다. 그래도 말 해버리고 살지. 진창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다.
아니야, 이승 젤 밑바닥에, 진창에 처박혀도 해야 할 일이 있는 거야. 뱉어내야 될 말이 있는 거야...
응어리를 지고 혼자 떠났을 길이 너무 시리다.
억울함을 풀면 대개 적이 생긴다. 혹자는 피해자에게 어울리는 행동거지를 논하기에, 시시비비를 더 철저하게 가려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게 싫다 죽어버리면 한풀이를 내가 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 내가 볼 수가 없다.
한명한테 피해를 입어 그 한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상태가 있다. 그 때문에 억울해서 피해를 토로하고, 맞서 싸운다면 분명 상대의 편이 나를 미워할 수 있다. 그럼 여럿이 나를 미워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지난한 과정에 내 편도 생길 것이다. 아무리 이런 세상이라도 옳지 않음에 공분할 수 있는 상식인은 있다. 그렇게 된다면, 그랬다면 혼자 억울하게 죽는 것보단 나았을 거라고... 그렇게 믿는다.
그녀를 탓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다른 선택을 했어도 나는 분명 응원했을 거라고 말하고 싶다.
살기 위해 억울하다 말하는 것은 나쁜 게 아니야, 너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한 사람의 삶이 누군가의 돈벌이가 될만큼 헐값이었던가?
스스로 죽어버리면 내 삶의 값으로 저 치들의 알량한 잇속을 챙겨주게 된다. 그 꼬라지를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가 직접 싸워서, 내 선택으로 말을 해야만 한다.
이제 자살은 자기방어가 아니다. 한 생애가 쉽게 유희거리가 된 시대에 자살은 우스꽝스러운 이야기가 된다.
죽은 사람을 우습게 다루지 말아줘. 이 부탁이 그렇게 숭고한 도덕관념을 요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인스타에 띡하고 스토리 올리는 것만이 고인의 명복을 비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하지 않을 때 진정으로 추모가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