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글읽기

66번 버스 운전사 김창년

큐키🍪 2019. 12. 2. 10:37

일산 한 귀퉁이를 도는 동네 버스에는 기인이 있었다.
내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를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이름이 유난하게 괴상했기 때문이다. 

 

“김창년.”

 

심지어 차량 번호도 18이 수두룩하게 들어있어서 그 이름 석 자와 섞여 들어 강 렬한 인상을 주었다. 18, 김.창.년. 창년 아저씨. 18 18...
그를 처음 만난 건 학원이라면 질색을 하던 내가 꾸역꾸역 국어 학원에 등록하러 가던 길이었다. 세상 무너진 것처럼 끌려가던 나는 창밖으로 지나가는 일산 시장 거리에 시선을 떨구고 있었다. 그런데 직원 등록표인가? 내릴 때 쯤에 문 위의 네 모난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김창년이라는 이름은 너무나 강렬해서 아무 생각 없 이 고개를 쳐들었던 나는 순간 웃음이 새어버렸다.
아니 우습잖아 이름이 무슨 창년이야. 부모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거지? 기이한 건 이름뿐만이 아니었다.

 

끼익-

 

LG 전자의 서비스 센터를 낀 사거리 앞은 신호 텀이 굉장히 길었는데 창년아저 씨는 언제나 빨간 불로 바뀔 때쯤 그 거리에 도착해 차를 세워 놓고는 도로로 나 가셨다. 뭐하나 싶어서 한번은 지켜봤는데 글쎄. 그 순간을 이용해 담배를 피고 계셨던 거였다. 아니 이 잠깐을 이렇게나 유용하게 이용하다니. 대단하다는 생각 이 들었다. 버스를 지지대로 삼아 한쪽팔을 걸치고 세상 멋나게 담배 연기를 뿜 어내는 모습은 흡사 달콤한 인생의 이병헌이었다.

 

그는 ‘진짜’였다.
패인 주름살 하나하나에 인생의 풍파 따위가 스며들어있는 사람이었다. 눈에는 그르렁대는 짐승한마리가 살고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물론 나이 때문인가 그의 눈알에 사는 짐승은 박제되어있는 것 같았다. 분노, 회한, 환멸... 그의 눈빛은 어 딘가 뻣뻣했다. 박제된 짐승의 털처럼.
도대체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 수 있었을까. 뼈도 한줌인 이 늙은이에게 무엇 이 숨결이 되어 이런 기묘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걸까.
매번 같은 시간대에 버스를 탔기 때문에 운 좋으면 한 달에 두어 번 정도는 창년 아저씨를 볼 수 있었다. 국어 학원을 가기 전에 창년 아저씨를 지켜보는 것은 나 름 쏠쏠한 재미를 주었다. 첫째로, 그의 운전 실력에 일단 감탄했다. 그는 거친 운 전사 였다. 방지턱을 지날 때는 머리가 의자보다 버스 천장에 가까워지는 신묘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덜컹! 그는 개의치 않았다. 어떻게든 사거리의 신호를 맞춰 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버스 기사들과의 관계도 원활해 보였다. 거칠게 버스를 몰아 그 사거리에서 담배 를 필 때 항상 지나가는 버스 아저씨들과 인사를 주고 받았다. 그게 어떤 차든 상 관없이. 하긴 사이가 좋지 않았다면 근무 중에 담배를 피는! 기이한 행동은 신고를 받아도 진작 받았을 것이다. 한번은 운전 중에도 창문을 내리고
“어이 김씨!”
하는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다. 친해도 이렇게 친할 수 있구나. 

 

“으따, 오늘은 또 언제꺼정 흐블 더워불까나”

창문 두 개를 넘어서 하는 대화는 굉장히 친숙하고 일상적이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세 번째 단서. 창년 아저씨는 전라도 사람이다. 구수한 사투리는 강렬하게 고막을 때린다. 창년 아저씨에게 관심을 둔 후로 나는 항상 운전석 뒤 자리에 앉았는데 처음에는 사투리가 심해서 대화를 못 알아들었다. 나중에야 맥락으로 알 수 있었던거지. 나는 부모님이 모두 전라도 분이셔서 뭔가 더 정이 갔다. 애초에 창년 아저씨가 꽤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서 정을 둔 것 같기도 하다.
한 날은, 학원으로 가는 길에 “개/고양이 팔아요”하는 플랭카드를 보았다. 

 

눈이 휘둥그레졌던 이유는,  절대 생명체를 팔만한 시장바닥도 아니었고 더군다나 옆에는 “개/ 고양이 탕”이라는 갑판대가 서있었기 때문이다. 이 무슨 기승전결 확실한 시나리오란 말인가. 계속 수업을 들으면서도 찜찜했다. 돌아오는 길에도 그 반인륜적인 행태가 자행되고 있다면 한번 가보겠다고 마음먹었다. 근데 속으로는 귀찮기도 하고 괜한 오지랖 부리나 싶어서 내심 그 장사하는 아지매가 하루 일을 빨리 정리했길 바랬다.

 

허허. 세상일은 참 내맘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다. 아지매는 꽤 오랫동안 동물 친 구들을 팔지 못하고 계셨다.
‘아오, 씨.’
나는 괜히 양심에 찔려서, 괜한 선민의식에 그 가판대로 가보았다. 조그마한 우 리에 고양이 새끼들이 줄지어 앉아있고, 똥개들은 똥이랑 뒤엉켜서 이게 똥인지, 강아지 새끼인지 구별이 안갔다. 정말 지옥이 있다면 그런 모습일까. 심지어 고 양이 우리에는 더 이상 새끼라고는 볼 수 없는 덩치가 나머지 고양이들 군기를 잡고 있었다. 카악질을 해대며 겁을 주는 게... 더 우스웠던 건 사람이 다가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애처로운 눈빛으로 ‘살려줘’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유난히 내 눈을 잡아끄는 아이가 있었다. 남들보다 더 약하고, 비실대고 가녀린 아이가. 

 

아 아 정말. 수요가 공급을 낳는데, 이러면 안되는데.
“아줌마, 고양이 한 마리 데려가는 데 얼마면 돼요?”
제기랄. 아줌마가 머리를 굴리신다. 전두엽 활성화 되는 소리가 나한테까지 들린다.
“ᄋ... 이만원이면 돼”
수줍게 말씀하지 마세요. 오천원이라고 하려고 하셨잖아요.
그렇게 난 한 마리를 급하게 데려왔고. 그 길로 구청에 민원을 넣었다. 동물 보호법 위반 아니냐고. 

 

그래봤자 고등학생이 말하는건데 무슨 소용이 있었겠냐만은, 일단 있는 논리 없는 지식 다 꺼내서 항의는 하고 버스를 탔다.

 

안녕하세요. 창년아저씨. 하....
창년 아저씨의 불같은 성미를 알고 있었던 나는 그 즉시 내렸어야 한다. 

 

하지만 얼결에 나는 버스에 탔고 내 손에는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철부지 주인님 이 있었다. 아 쫌 울지마라 집가서 울자. 거의 애원하다시피 했지만 고양이님은 알게뭐냐는 식으로 옹알옹알대셨다. 창년 아저씨가 백미러로 힐끔쳐다보더니,
“거 저 학생!, 거슥 뭐여?”
좆됐다. 나는 방지턱에 곤두박질쳐서 그대로 튕길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아 재의 패턴을 보았을 때 나같이 공공질서에 폐를 끼친 계집애는 그의 분노를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최대한 상냥하고 순진하게
“네?”
“으따, 여거 사람들도 많은디 그라믄 안돼지라 시끄럽게 뭣허는 짓이래, 거슥 뭐 괭이 새끼여? 그란게 있음 자가용을 이용하던가 해부러야지 우째 버스를 탔댜?” “아,,, 죄송해요 정말 어쩔 수가 없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나한테 죄송할것은 없구 저짝에 어르신들이랑 고객 여러분께 죄송해야지 않겄어? 담부턴 그러지 마러”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창년 아저씨는 이번 한 번은 봐주겠다는 식이었지만 나는 너무 눈치가 보여서 쫓 기듯이 버스를 내렸다. 그리고 이 고양이님을 옮길 상자도 필요하지 싶었다. 일산시장은 참 안 파는게 없는데 그놈의 상자가 이렇게 없을 줄이야. 한참을 뒤적여도 괜찮은 상자쪼가리가 보이지 않았다. 이미 내 학원 가방에는 고양이님이 배변을 처리하고 계셨다. 거 운수 더럽게 없는 날이네. 

 

그렇게 한참을 찾다가 하늘 이 어둑어둑해질 쯤, 에라 모르겠다 싶어 길을 걷기 시작했다.
창년아저씨가 저 골목에서 담배를 빨고 계셨다. 마치 나를 기다린 것처럼. 

 

“학생 뭣혀, 괭이 그리 들고 가믄 불편하지. 학생 같음 고런데 있고 싶겄어?”
만신창이가 된 내 가방을 보곤 아저씨가 한 마디 거드셨다.
“하....하하 안녕하세요...”
최대한 빠르게 길을 지나가려고 하는데, 아저씨가 한 번더 나를 부르셨다.
“아니 뭣허냐니께, 일로 와봐 여기서 하나 구해갖고 가자고.”
아저씨는 편의점 뒤편에 쌓여있는 상자 더미들을 뒤적이셨다. 나도 하는 수 없이 옆에서 거들 수 밖에 없었다.
“요만하믄 되겠구마잉.”
적당한 크기의 상자를 집어들고는 창년 아저씨가 흡족하게 웃으셨다. “학생”
“예”

 “학생은 사는데 뭣이 젤 중요헌지 알어?”
‘일단 이 상자는 아닐 것 같군요.’ “글쎄요?”


“사람이건 동물이건 번듯한 집이 중요혀, 아무리 그거이 누데기같아도 마음 뉠 곳이 필요한거거등. 요만한 집구석이라도 이눔이 맘 붙이면 고거이 집이 되는겨. 우째쓰까 괭이 작아가 챙기는데 솔차이 힘이들겠구마.”

 

 

나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게 창년아저씨는 그 대상이 어딘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항상 분노에 차있었고, 그걸 숨기는데 재주가 없었다. 근데 지금 본 이 장면의 창년 아저씨는 뭔가 애처롭기 까지 했다. 이런 약한 남자가 아니었는 데. 그 후로도 몇 번 더 창년 아저씨의 버스를 탈 기회가 있었는데도 그 때의 모습 은 다시 볼 수 없었다. 대신 그의 분노의 도착지 정도는 알아 챌 수 있었다.


“거액의 추징금을 징수하기 위한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부동산 처분 절차가 올해에 큰 진전을 보지 못하고 해를 넘기게 됐습니다. 시공사 유찰은 올해 초....”
“저런 써글! 빌어먹을 잡놈!”
아마도. 손님들이 바글바글한 버스에서 최대한 조용히 말한거겠지만. 그렇게 쩌렁쩌렁하게 화를 내는 창년 아저씨의 모습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운전 할 때 상대방 운전사에게 쌍욕을 늘상 퍼붓던 아재였지만, 그날만큼은 말에 살기가 있 었다. 눈알도 푸르스름하게 빛이 났다. 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김창년은 전두 환에게 화가 났다. 아니 항상 나있었다. 그치만 왜? 전라도 사람이 전두환 싫어하 는건 당연한가? 아니, 아니다. 이건 다르다. 이건 분노다. 단순한 혐오가 아니다.
하루는 모의고사니 뭐니 대비한다고 국어 학원이 늦은 시간에 끝났다. 아빠 차로 집을 가고 있었는데,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창년아저씨가 걸어가고 있었다. 피 곤이 땅끝에서 그를 잡아끄는듯, 그는 곳 땅으로 들어갈것만 같이 위태로웠다. 그렇게 향하는 곳이 허름한 오피스텔 같은 곳이었다. 절대 한 가정이 살만한 곳 은 아니었고, 딱 지친 몸 잠시 뉘이는, 상자같은 곳이었다. 하긴 전라도 아재가 여 기까지 올라와 있는 것도 이상했고, 가정이 있었으면 진작에 이런 일은 때려 칠 연배인 것 같기도 했다.

 

네 번째 단서, 그는 혼자 타지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 나이에.왜 그는 혼자일까? 도무지 모르겠다. 손주가 있을 법한 나이다. 운전 짬밥으로 봤 을 때 이일도 황으로 하는 일은 아니다. 나름의 바이브가 있다. 곡예 같긴 해도 운 전은 참 잘한다. 꽤 오랜 시간 이 일을 해왔을 것이다. 그럼 모은 돈도 꽤 있을 텐 데 굳이 이렇게? 왜일까. 나는 너무 궁금했다.


우리 마을에는 엄청난 분이 한 분 또 계셨다. 정류장 마다 “문재인 빨갱이, 좌파 세력 몰아내자.” “종북 척결! 안보 증진!” “박정희 각하 만세! 전통 만세!” 이런 걸 스프레이로 뿌리고 다니시는 분이었는데 그날도 작업을 마치시고 버스에 올라타 셨다. 나도 그 날 얼굴은 처음 봤는데 뭐 그냥 평범한 노인네였다. 그런데 창년 아저씨에게는 그렇게 안보인거지.
“아저씨 시방 뭐허는 거여?”
그렇게 싸움은 시작되었다. 나는 그렇게 학원을 가고 싶은 날이 없었다. 손님들은 하나 둘씩 투덜대며 자리를 떴지만 누구도 그 대화에 끼진 않았다. 나는 어쩔 줄 모르고 앉아있었는데 도무지 나갈 수 는 없었다. 운전석 바로 뒤에 앉은 나에 게 그분들은 핑퐁을 하듯 동의를 구하셨다.


그 날, 창년 아저씨가 왜 그랬는지, 뭐에 화가 났는지는 잘 알게 되었다.
“그 개새끼가! 우리 귀한 장손을 죽이고! 우리 집까지 홀랑 다 태워먹었어, 니깟놈이 뭘 안다고 씨부리기는 씨부려 이 육시럴 놈아!”
박제된 짐승이 방부제를 뚫고 있다. 하나하나 뻗치는 갈기가 눈에 선하다.

 

울음에 가까운 부르짖음에 나는 사람이 이런 감정도 가질 수 있구나, 새로운 걸 배웠다.

 

그리곤 어머님부터 고조 할아버지까지 차근차근 짚어주는 패드립이 이어졌다. 한참 있고서야 정류장에 경찰들이 닥쳐왔고 나는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빠 져나갔다.


그 후로 나는 용인으로 이사를 갔고, 다시는 창년 아저씨의 버스를 탈 일이 없었 다. 그리고 누구나 그렇듯 스쳐간 사람들을 찬찬히 잊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21살이 되었고. 오늘 ‘택시 운전사’를 봤다.


아아, 이건 김창년이다. 내가 그 동안 잊고 살았던 창년아저씨다. 그 때 데려온 고양이는 3년만에 죽고 말았고. 나는 그를 잊었지만 이 영화 속에 김창년이 똑똑히 살아있다. 나는 이제야 알것같다. 그는 화가 난게 아니라 슬픈거였다. 잊혀지는 게, 잊는게 슬픈거였다. 번듯한 집 한 채가 없어 네모난 버스에 세월을 흘려보내는 그는, 하염없이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거였다.

 

그는 지금 어디있을까. 여전히 사거리에 적절하게 당도해 담배를 빨고 있을까. 담배스팟에 빨리 도착하겠다 싶으면 학을 떼고 싫어하는 끼어들기를 봐주고, 늦겠다 싶으면 방지턱이 눈에 뵈지 않는, 김창년. 그는 지금 어디있을까.

 

 

 

몇 해전에 학교 대나무 숲에 올려서 인기를 좀 끈 글이다.

이제 와 말하자면 이 이야기의 창년 아저씨는 두 명이 섞여 있는 인물이다.

그 중 한 분은 진짜 이름 김창년인 버스 기사님이시고, 정말 저런 성격을 가지고 계셨다.

다른 분은 광주에서 가족을 잃은 할아버지였다.

 

우리 일산 탄현동은 버스 정류장마다 종북척결!을 스프레이로 뿌리고 다니시는 익명의 뱅크시가 있었다.

또 정말 개/고양이를 파는 더러운 시장이 있었다.

 

그리고 학창시절의 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