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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글자의 주예수


이 이야기를 듣고 그 누구도 일말의 동정이나, 슬픔 등 여타의 감정을 오래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이런 삶도 있었구나, 이런 정도로 글을 흘려주길 바란다. 늘상 부정적인 타인을 만날 때  겪는 그 묘한 거부감이 없었으면 한다. 나 역시, 슬픔 따위의 깊은 감정을 과시하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혐오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마치 그런 감정에 위시해,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고 잰 체하는 예술쟁이들만 보면 절로 얼굴이 찌푸려진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건 예술도 뭣도 아니고, 배설행위에 불과하다. 때문에 타인에게 내 감정의 잔여물이 묻지 않았으면 한다.

 


나의 학창시절의 공기를 떠올리면, 샤워 후에 거울에 맺힌 물방울, 그 너머에 나를 보는 기분이다.

분명 그 시절의 산소분자에는 물이나 찌꺼기들이 하나씩 더 붙어있었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그 공기에 질식당하는 기분이었다. 언제나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을 쳤다. 그 발버둥에 치인 사람들도 있었다. 그 '짓거리들'을 입에 다시 올리기 민망할 정도로... 나는 너무 어렸다. 글자로 옮기려고 손가락을 아둥바둥해도, 자꾸 반작용으로 뇌간이 울린다. 당시에 내가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한 것만은 틀림 없으며, 그 행동들은 타인으로 하여금 불쾌를 일으켰다. 

‘깊은 감정’에 위시해 나를 이해해 달라고 몸부림치던 그 때의 나. 나는 십대의 나만 보면 그렇게 얼굴이 찌푸려진다.

 

기억을 파헤쳐보면 대수롭지 않은 것들 먼저 떠오른다. 남자애들 사이에서 일상적인 뒷담, 분노하는 나, 등 돌리는 여자애들. 내 렌즈로 보면 나만 피해자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 돌이켜보면, 꼭 그렇지도 않았는데. 하지만 학창시절의 나는 알지 못했다. 지금도 ‘안다’라고 명명하기는 부끄러운 정도다. 걔네 잘못도 분명 있었는데라는 마음이 떠오를 때마다 그냥 내 잘못도 있었다고 눌러놓은 것에 불과하다. 어쨌든, 이쪽이 마음 편하니까 그렇다고 하자. 

 

이건 내 친구들이 나를 떠나기 전에 해줬던 조언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하잖아? 그래 정답이다. 이게 훨씬 홀가분하다. 나도 잘못이 있으니까 분명 그들도 내 등을 떠민 것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던 집단에서 튕겨져 나왔다. 절대 ‘쫓겨났다’는 표현을 써선 안 된다. 이런 피동적 단어는 나에게 흠집을 낼 거다. 그럼 내 피 냄새를 맡고 그들이 찾아와 내 환부까지 코를 들이밀 것이다. 그냥 흔한 말다툼이었다. 다만 나는 하나고 그들은 여럿이고, 집단의 권력을 쥐었을 뿐이지. 참 우습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무엇을 위해 위계서열이 존재했다는 것 자체가. 그 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적는 건 내 파편적인 기억으로 인해 무리도 있고, 이 글의 목적도 아니기 때문에 소용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끔찍한 일이 있었다. 나는 그 날 하루를 3년 동안 살았다. 고2, 고3, 재수. 그리고 단 하루를 위해서 살았다. 수능. 나는 대학만이 유일한 탈출구라고 생각했으며 학벌이 내가 가질 수 있는 유일무이한 무기라고 여겼다. 나는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였고, 모든 걸 무난하게 해냈지만 특별한 재능은 없는 아이였기에. 그렇게 큰 욕심을 부린 것도 아니었다. 모의고사 점수 정도에 맞춘 대학을 노린 것뿐이다. 나를 무시했던 모두에게 최소한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대학 을 원했다. 나는 신을 믿었다. ‘온전히 의지했다’ 라는 표현이 더 올바를 지도 모른다. 신이 있기에 그가 나의 이 모든 고통과 번뇌를 수능 날에 보상해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수능 장을 향하는 버스에서부터 ‘혹여 나를 버린 저 아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 옆 자리에 앉으면 어쩌지’ 따위의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그 날 처음으로 긴장할 때 나타나는 나의 신체반응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나는 긴장하면 손발이 얼어붙는다. 펜을 잡을 수 없이 손마디가 마비된다. 아무리 비벼봐도 소용이 없다. 마찰열보다도 신체의 차가움이 더 크다. 마치 시체처럼 차갑고 딱딱해진다. 

 

그리고 그 죽일놈의 눅눅한 공기. 

나는 어린 시절 수영장에서 빠져 죽을 뻔한 기억을 떠올린다. 

아니 이건 비린 냄새다. 

나는 틀림없이 어디 해협쯤에 빠져있는 것이다. 발버둥 쳐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데 그게 안 된다. 

나는 점점 가라앉고 있다. 몸이 무겁다.

 

그날 먹은 휴게소의 핫도그를 잊지 못한다. 눅눅한 빵에 싸구려 기름이 번들거리던, 약간의 온기가 남아있던 핫도그. 하늘은 쓸데없이 아름다웠으며 밤공기는 여전히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책장으로 온통 뒤덮인 골방에서 수험표 뒷면의 내 답안들에 동그라미를 매길 때 진심으로 신을 원망했다. 

한번이라도 당신이 날 돌아 봐 줬다면 이건 아니라고. 이건 나 따위가 이겨낼게 못된다고.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냐고. 

수험 공부를 하다 응급실에 실려 갈 때도 이러진 않았다. 단지 신이 정해놓은 길이 있을 거라고 위로했을 뿐이다. 

 

그 때 나는 신을 버렸다. 

 

그 아이들이 너무 미웠다. 

 

아빠와 함께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진심으로 걔들이 불행하기를, 울대가 터지도록 저주했다.


당시에 내 집은 일산에서 알아주던 비싼 아파트였다. 아주 먼 곳에서도 우람한 자태를 뽐내던 건방진 건축물. 나는 그 위용에 흠집을 내주고 싶었다. 아이의 자격지심이었다. 사실 우리 학교에서 그럴 마음을 먹었어야 하는데, 그때는 일말의 미련같은게 있었나보다. 걔네들이 나한테 사과하고 다시 친구가 되는 그런 꿈을 잠시 꿨었나 보다. 나는 내 마지막 공간을 정하고 한껏 숨을 쉬어 보았다. 이제 나를 괴롭히던 눅눅한 공기는 없다. 11월의 서늘한 밤공기는 그 동 안 쌓여왔던 폐부의 찌꺼기들을 녹여주고 있다. 사실 그렇게 높은 곳도 아니라서 어떻게 결말이 날지 모르겠다. 다만, 나는 주변을 느껴보고 싶다. 그 오랜 시간동안 앞만 보고 온 나에게 주변은 굉장히 낯설다. 

 

우습게도 저 교회에서는 전광판 에 빨간 글씨로 주예수의 이름을 빌리고 있다. 나는 그 판때기를 부서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저 빠알간 전구가 지병을 앓던 나의 눈알 같다. 한참을 질식당하다 가끔은 구역질을 했는데, 안구의 실핏줄이 이따금 터지곤 했는데, 그 때 내 눈 알은 저런 끔찍한 색이었지. 

 

이젠 좀 떨어져서 찬찬히 지나가는 글자들을 살펴본다. ‘영광 얻으리라’ 한 때는 그 영광이라는 게 이 터널의 끝에서 날 마중할 줄 알 았다. 아니네. 자 이제는 내 스스로 결말을 맺을 시간이다. 신을 기다리는 건 지쳤다.

 

인도에는 수많은 사람이 지나가고 있다. 내가 한 번도 되지 못한 천진한 아이들. 예쁜 옷을 입고 친구와 연신 웃음을 터뜨리는 여학생. 이 아파트의 위용에 걸맞게 당당하게 걷는, 비싼 코트를 걸친 아줌마. 

 

공기는 이제 물기가 없는데 시야가 온통 축축하다. 

 

어느새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풀냄새가 난다. 생기의 냄새다. 

 

나는 살고 싶다. 삶에 대해 큰 욕망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죽는 게 무섭다. 

 

저 사람들 틈을 비집고 시체가 되어 떨어지는 게 아니라 함께 걸어보고 싶다. 난간에서 손을 떼보고 빨간 글자를 다시 쳐다본다. 

 

예수의 이름 뒤에 교회의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홍보에 불과한 빨간 글자들. 그 글자들이 나를 조롱하는 것 같았다, 다시 흐려지더니 이젠 아파트 창에 비치는 빛과 한데 얽혀서 번져 보인다. 앞으로 쏟아질 것 같은 몸을 일으켜 세우고 전광판을 노려보았다. 나는 살아야 한다. 그래 신은 있다. 나는 그 신한테 한번 빚을 진거다.

 

저 우습고 처량한 빨간 전광판. 신을 믿는 건지 교회를 믿는 건지. 신의 이름을 붉은 색으로 내세우며 돈벌이하는 저 전광판을 비웃어주겠다. 저 전광판에는 신이 없다. 신을 팔아 장사를 하겠다는 마음, 이건 어쩌면 나를 닮았다. 나는 항상 신의 등 뒤에 숨어 투정만 부렸을 뿐이다.

 

얼굴이 달아오른다, 저 빨간 빛이 얼굴에 비쳐서인지. 고개를 돌려 발을 내딛어본다. 공기가 차다. 그래도 나는, 나 하나만은 이젠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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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한 2년 전에 쓴 글이네

옛날 글을 보면 참 부끄럽다 

못 쓴것도 못 쓴건데 감정을 주체를 못하는 느낌임 ㅋㅋ

나도 늙긴 늙는구나 신기하네

 

이런 미완성의 글을 올리는 이유는....

그냥 요새 디엠으로 고민을 푸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뭐라고 여러분의 다층적인 인생의 겹을 알겠습니까.

각자 사정이 있고 저는 절대 그걸 다 알아드리지 못해요. 저는 너무 부족한 사람이라

그냥 제 얘기를 해드리는 것밖에 못하겠더라고요.

너무 꼰대같아서 디엠으로 하나하나 말은 못하겠고...

이렇게 글로 남깁니다. 

저를 멋있다고 말씀해주셔서 항상 감사하지만 사실 저는 그렇게 멋진 사람이 아니에요
노력하고는 있어요.

저 역시 수험생이었고, 정말 제 자신이 못났다고 생각한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나아지더라고요.

그냥 꾸준히 나아가보면, 어느 순간에 어 내가 이렇게 괜찮아졌네 하는 때가 와요 분명.

 

그러니까 다들 너무 좌절하고 주저앉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뛰어왔다면,  이젠 슬슬 둘러보며 걷더라도, 꾸준히 걸었으면 좋겠어요.

 

다들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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