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굳이 우리 학원을 다니지 않더라도 세화는 맞춤형 교육이 필요해요. 요새 남들 다가는 학원 다녀서 성공하는 케이스가 얼마나 있을 것 같아요? 남들 다 하는 거 하고 또 내거 챙겨야 sky 이상은 노릴 수 있는 거예요.”
저 말을 지금 거짓 안보태고 5번 정도 들은 것 같다. 한 번의 대화에. 학원 부원장 님은 특유의 낭창한 목소리로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데 재주가 있었다. 가끔은 주술을 거는 거 아닐까, 착각이 든다. 상담실 옆에서 조교 일을 하는 나로서는 그 목소리가 점점 가루약같이 느껴진다. 쓰고, 울렁거리고, 토악질이 나는데 그 대 사들은 몸에 점점 스며든다. 대화가 이뤄지고 있는 공간에 직접 있진 않더라도 빤히 그려진다. 자식일 앞에선 한없이 작아지는 한 여성이, 전문가처럼 입을 나 불대는 아줌마가. 학원일이라는 건 대개 이런 식이다. 어떤 경기장이든 누군가는 물어뜯기고 복종의 제스처를 취하고 누군가는 기세등등하게 패배자의 위에서 군 림한다. 그게 성적이 더 좋은 학생이건, 입시 정보에 빠삭한 선생이건 행동 양식 은 비슷비슷하다. 학생들도 알아서 성적 따라 줄을 선다. 줄이라는 게 다 똑같은 땅 밟고 선 게 아니라 수직적인 모양새다. 고작 열댓 살 어린애들이 자기보다 좀 잘났다 싶으면 알아서 눈을 아래로 슬쩍 내리깐다. 그냥 다 이런 식이다.
하여간, 부원장님 패턴은 변하질 않아요.
나는 속으로 매슥거림을 삼키며 상담실 앞을 가로질러 갔다. 아무래도 엄마 손에 이끌려 온 듯한 세화는 역시나 풀이 죽어있다. 희고 가는 몸에 코가 뭉개진 듯이 둥그스름한 여학생이었다. 쌍꺼풀이 없는 눈은 얼굴 두 쪽을 패어다가 눈알을 박 아 넣은 듯, 그게 눈이라기 보단 끼워 넣은 구슬처럼 보였다. 머리를 꽉 묶어서 한 올의 잔머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저게 마치 세화를 지탱하는 뿌리인 것처럼 그 녀를 구성하는 것들 중에 유일하게 힘이 느껴졌다. 다른 부분은 곧 흘러내릴 마 냥 가녀렸다. 꼬옥 붙든 엄마 손을 놓으면 세화는 곧 땅으로 고꾸라질 것 같았다.
‘xx고라... xx고면 공부를 꽤 하는 학생일 텐데.’ 나는 잠시의 씁쓸함을 느끼고 서둘러 고개를 돌린다. 이런 감성에 젖어있으면 나도 모르게 저 아이한테 동정을 느낄 것이다. 그건 안 된다. 이 ‘학원’은 그냥 적당히 머물러서 시간당 만원을 주는 그런 공간인 것이다. 어떤 미련도, 유대도 만들어선 안 된다. 그건 너무 지치니까. 그냥 너희들은 나한테 a4용지 상단에 적은 이름 석 자로만 남아라. 나는 그 이름 을 출석부랑 대조하면서 점수를 매기고 숫자를 쓰고 등수를 가를 뿐이다. 제발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되지 마라.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세화가 자기 엄마를 붙잡아 맨 손에서 시선이 떠나질 않는다.
‘저게 끊어지면 저 애는 그대로 사라지는 거 아닐까?’ 쓸데없는 상상을 하면서...
나도 새롭게 런칭된 수업에 첫 인사를 하게 되었다. 나를 고용해주신 선생님은 자랑스럽다는 듯 나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으셨다.
“000선생님은 서울대학교 나오셨고, 수능에서 아주 우수한 성적을 거두셨고, 전국 1위 고등학교 출신이고...”
뻘줌하게 서있었던 나는 마치 트로피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하는 일보다 훨씬 더 많은 급여를 받는 것은 아마 내가 아니라 내 타이틀들일 것이다. 그래서 이 어색하고 민망한 순간들도 견뎌야 한다. 가당치도 않은 칭찬 세례가 끝난 후 에 쏟아지는 박수와 동경어린 눈빛들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나의 ‘업적’들을 위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조교 선생님처럼 공부를 잘할 수 있어요? 가끔 질문을 받다가 이런 말들을 들으면 문득, 형편없는 내 영어 실력과 수학 성적을 떠올려 웃음이 새곤 한다.
그런데 세화는, 세화만은 그렇게 막연하게 순수 띈 질문도 하지 못했다. 내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점심이랍시고 말도 안 되는 과자 부스러기를 사오면 세화는 늘 공손하게 두 손을 내밀며 고개를 숙인다. 다른 애들한테는 이것 따위 성에도 안찰 것 같은데 세화는 이걸 먹으면 체할 것 같다. xx고는 기숙사제 학교 인데, 세화는 어떻게, 거기서 잘 살고는 있는 걸까? 저 가는 몸으로... 뭐 이런 주 제 넘는 걱정을 하다가도 남 일이지 싶어 생각을 떨쳐버린다.
어떤 뜬금없는 날이었다.
선생님이 갑자기 세화를 끌고 조교 실에 들어와선,
“00아, 여긴 이세화라고 해. 우리 세화가 다른 과목은 꽤 하는데 영어가 약해서. 특별히 잘 부탁할게. 알겠지?”
대체 뭘? 내가 어떻게 할 도리도 없는데 굳이 나한테 와서 세화 영어 못하는 걸 확인 사살 시키지? 걔 시험지를 채점할 때는 아, 얘는 못하는 애니까 이 점수는 당연하겠거니. 해야 하나? 왜? 왜 그래야지?
“ᄋ..아! 네!”
주체 못하는 동공을 추스르고 힘겹게 대답을 마쳤을 때, 나는 슬쩍 세화의 눈치 를 볼 수밖에 없었다. 세화는 예의 그 처연한 표정으로 바닥에 시선을 떨구고 있 었다. 살짝 떨면서.
나는 채점할 때 아이들의 이름과 얼굴을 매칭시키지 않으려고 부단히도 애를 쓴 다. 괜히 이 아이의 성적을 알고 괜히 편견을 가지고 나도 모르게 괜히 업신여길 까봐. 근데 그 이후로 세화와 세화의 시험지는 불가역적인 동화현상을 보였다. 시험지에서 세화의 허여멀건 한 얼굴이 떠나질 않았다. 못하긴 못했다. 정규분포 그래프가 있다면 세화는 저기 끄트머리에서 꿈틀대는 정도였으니까. 정규분포 그래프! 그 언덕배기 정상에서 얼마나 많은 애들이 비집고 서있는가.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고... 세화는 그 경쟁에 참여도 못하고 있었다. 눈앞에 커다란 산 을 남겨놓고 긴 한숨을 쉬는 듯 평균에도 도달하지 못한 세화는 축 늘어져 있었 다.
나는 채점을 하다 세화의 시험지 한 구석에 정규분포 그래프를 그어본다. 여러 번.
어차피 고등학교를 막 올라온 세화는 이 선의 의미를 알지 못할 것이다. 알아도 뭐, 이미 여러 번 덧그린 그래프는 잉크 똥을 치우는 정도로 보인다. 이번에도 세 화는 맞은 것 보다는 틀린 걸 세는 게 더 쉽다. xx고는 내신대비도 꽤나 어려워서 대학생인 내가 봐도 몇 개 틀릴 법하다. 그걸 또 용케 다 맞는 학생도 있고, 반절 만 맞는 학생도 부지기수이다. 그런데 세화는 아예 다 틀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렇다고 채점을 안 할 수 도 없는 게 대강 뭐라도 써서 내긴 한 단 말이다. 나는 그럼 또 혹시나 해서 정답이랑 비교해보다 가끔 짜증이 치민다. 아예 아무것도 적지 않으면 깔끔하게 채점을 안 해도 될 텐데. 귀찮게 스리. 나쁜 생각이 슬쩍 든 다. 그래도 세화는 세화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일 텐데 안쓰럽기도 하다. 다른 강의실에선 또 선생님이 xx고를 들먹이며 경쟁의식을 고취시키고 있다.
“여러분, 곧 방학이죠? 방학이라고 막 퍼지거나 그러면 안 됩니다? xx고 학생들 만 해도 벌써 방학 특강을 신청하고 아주 빡세게 공부 열기를 불태우고 있어요 ~?”
아이들의 잇따른 탄성.
“우와아....”
끝맺음이 작아지는 걸 보니, 뭔가 혼재된 것 같다. 두려움, 부러움, 초조함... 지금 xx고 학생들 시험지 점수를 매기는 나로서는 그저 우습기만 하다. ‘이 한 달 그냥 쉬는 게 나아 보이는데. 어차피 별로 차이 나는 것 같지도 않구먼. 학교 이름이 대순가.’
세화는 그 강의실의 학생들보단 공부를 잘하는 거겠지. xx고에서는 못하는 편이지만.
세화는 어딘가에 낑겨 있는 걸까. 낑겨서, 압력을 못 버텨, 몸이 점점 짓이 겨지고 있는 걸까. 그래서 자꾸만 말라가는 걸까. 궁금했다. 하지만 그 궁금증을 해소할 만큼의 애정도 의지도 없었기에 슬쩍 생각의 흐름에서 비켜나가 또다시 세화를 외면했다.
점점 이 강의 학생은 줄어들었다. 그도 그럴게 내가 봐도 실력이 느는 애는 없었 다. 난해한 문제에 평이한 강의... 부원장님이 그토록 자부하던 ‘맞춤형 교육’이 아무래도 효과가 없었나보다. 이상한 게, 나는 분명 이 학원이 사라지면 수입이 끊기고 아주 난처해 질 텐데 장사가 잘 안되는 게 쌤통이다. 배은망덕한 년이지 나도 참. 의외였던 건 세화가 계속 남아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세화는 하나도 늘 지 않았다. 채점을 해도 거기서 거기. 대체 왜 돈 낭비를 하고 있는 걸까. 그 돈으 로 나한테 과외를 배우는 게 낫겠다. 싶지만, 손님을 빼앗는 것은 그동안 녹을 먹 은 학원에 대한 예의는 아니겠지. 허허. 결국 다 장사치들이다. 되지도 않는 애 붙 잡고 된다 된다 희망고문만 시키고 있으니. 내가 봤을 때 세화가 영어 실력을 늘 리려면 이 학원부터 때려 쳐야 하는데, 아무도 그걸 말해주질 않는다. 물론 나도. 세화보다는 세화 엄마의 주머니 사정이 더 궁금할 뿐이지.
학원 일을 예상보다 빨리 마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늘 가던 카페를 갔다. 이 학원 거리는 추리닝 바람으로 학원 뺑뺑이 치는 아이들이 참 많다. 몇 시부터 몇 시 까지는 수학, 그 다음엔 영어 정해진 시간대로 학원을 옮겨가며 시간을 축낸다. 그것도 다른 학원들을 다니면 다행인 게,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햇빛을 볼 수 있다. 그게 아니라 종합학원을 다니면? 문제는 심각하다. 그냥 한 곳에서 해가 질 때까지 쭉 앉아있어야 한다. 이따금 나 같은 조교들이 가져다주는 음식들을 먹으 며, 그렇게 하루를 보내야 한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나도 그랬으면서 이게 참, 인간답지 못한 삶이다. 진절머리가 나겠다. 남일 보듯 그렇게 생각해야만 한다. 해를 보지 못한 아이들의 고개는 항상 숙여져 있다. 이 카페에서도.
진동 벨이 울리길 얌전히 기다리고 있다가 고개를 돌려본다. 저만치에 뿌옇게 세화가 보인다. 정이 들었나, 반가운 마음에 한참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세화는 그 렇게 꼭 잡았던 엄마 손을 쳐내고는 펑펑 울기 시작한다. 저 몸에서. 뭐 빠져나올 게 있다고. 어디서 저런 많은 눈물이 나오는 걸까? 처음으로 세화의 얼굴이 색을 띈다. 벌겋게. 눈물을 참겠다고 입을 앙다물어서 그런가 입술에는 피가 송글 맺 혔다.
“엄마, 엄마. 제발 그만해.”
끄윽 대며 말해서 거의 못 알아들었지만 그만하라는 말은 세화가 어찌나 분명하 게 말하려고 하던지... 선명하게 들렸다. 조교 일을 하면서 한 번도 세화의 목소리 를 또렷하게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의 세화는 마치 세상에 공표하는 것 같 았다. 엄마한테 그만하라고는 했지만, 이미 자신은 그만하겠다는 선언을 마친 것 이다. 처음으로 심장이 뛰는 세화를 조우했다. 세화의 엄마는 “얘가 왜이래.” 하며 서둘러 세화를 데리고 카페를 나갔다. 그치만 그 잔상은 나를 옭아매 나는 한동 안 멍하니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이잉- 지이잉-
아이들의 젊음을 채점해 얻은 4600원짜리 딸기 라떼가 나를 부르고 있다. 진동 벨의 떨림을 어루만지며 그 날의 세화를 기억한다. 영어 못하는 애라고 낙인 찍 혀 조교실로 들어오던 세화를... “앞으로 열심히 할게요...” 애써 떨림을 감추려던 세화를. 그 때 이렇게 세화의 손등을 쓰다듬어 줬으면 세화는 조금 다른 이유로 낯빛을 되찾을 수 있었을까. 약간은 상기된 얼굴로 시험지를 내며 칭찬해달라는 듯 뿌듯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을까. 이제는 알 수가 없다. 세화도, 세화의 시험지도 이제 나는 만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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