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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읽기

<미나리>는 사실 <사바하>랑 비슷한 류거든요

오늘은 <미나리>를 보고 왔습니다. 아무래도 윤여정 선생님이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다고 세간이 난리라서... 안 보면 안 될 것만 같은 분위기가 조성됐잖아요. 예술에 상이 뭐가 중요하냐 할 수도 있겠지만 또 이건 쇼비즈니스니깐 책임감 있는 예술가라면 자기 예술 하게 해주는 사람들한테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것도 참이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설하고, 오늘 영화 후기를 말해보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스포일러가 있을 겁니다.

 

 

<기생충> 앙상블이 오케스트라라면, <미나리>는 현악 4중주

1. 기억나? 우리 서로를 구원해주자 했잖아.

저는 미나리를 종교영화라고 해석했습니다.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냐고 볼 수 있겠지만, <사바하>의 주제의식과 맞닿아 있는 것 같아서 그렇게 느꼈어요.

 

저도 미국에 정착한 가족이 있어서 알게 된 건데, 한국사람들이 미국 사는데 교회 안 가면 커뮤니티를 형성하기 되게 어렵습니다. 옛날에 탈북 기독교인들이 남한에 교회 많이 세운 것처럼, 본래의 고향을 떠난 사람들에게 믿을 구석은 꼭 필요하니깐요. 교회는 신을 믿든, 인간관계를 믿든 정말 중요한 요소입니다. 작중의 한예리 분(모니카役 - 작품에선 이름이 한번도 안 나오고 지영엄마, 미세스 이 정도로 불려서 기억이 안 나는데... 이거 꽤 슬픈 부분)도 독실한 기독교인입니다. 캘리포니아에서 교회를 다녔고, 이주한 아칸소에서도 교회를 다니고 싶어하죠. 그에 반해 그의 남편인 제이콥은 그다지 신실한 신자가 아닙니다. 그가 믿는 건 자신뿐입니다. 미국식 엑소시즘에 콧방귀를 끼고, 폴 아저씨가 저지르는 기행에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행동하죠. 그래도 모니카를 신경쓰고는 있었는지, 모니카가 교회를 가고 싶어하자 "친구가 없어서 외롭지"로 대답해줍니다. 그에게 교회란 신앙심을 열렬히 토로하는 곳이 아니라 '사교의 장'에 더 가깝죠. 

 

<미나리>에선 끊임없이 종교로 매개되는 플롯이 연출됩니다. 기독교를 기축으로 연결되는 이야기들은 외딴 곳에 동떨어진 Lee 가족들의 서사를 묶었다가, 풀어주곤 합니다. 사실 이렇게 주인공들이 외딴 곳에 살면 최소한 가족 사이에서는 서사가 짱짱하게 이어져야 러닝타임을 이어갈 수 있는데, <미나리>에선 주인공 사이의 긴장감이 딱히 없어요. 제이콥-모니카, 할머니-데이빗 (앤은... 추후에 서술하겠지만 그냥 깍두기 취급) 이 두 쌍의 대립이 영화 전반을 차지하죠. 이렇게 한정된 공간에서 이야기가 이어지려면 <완벽한 타인> 정도로 서사가 꼬여있어야 되는데 <미나리>에선 딱히 그 긴장감이랄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이콥 - 모니카가 가장 팽팽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그것마저도 배우들이 막 우악스럽게 대사를 치는 게 아니니까 서정적으로 느껴질 뿐입니다. 이 정도 관계가 영화 전반의 분위기와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라서, 느슨한 구조가 나쁜 요소라고 말할 순 없습니다. 다만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선 관계의 확장을 위한 다른 기둥이 필요할 뿐이죠. 그 기둥이 바로 신앙과 폴 아저씨입니다.

 

폴 아저씨 방한하면 1호선 스카웃 제의 받으실듯

모니카는 신을 믿고, 교회도 신을 믿는 곳입니다. 하지만 모니카는 아칸소의 교회에서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죠. 교회엔 신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엔 사람이 있습니다. 여기서 한국의 관객들은 긴장감을 느낍니다. 당연하죠! 백인들이 우글우글 바글바글한데 아시아인들을 우겨넣는다? 십중팔구 칭챙총 송이 다가온다는 전조아닙니까. 하지만 감독은 'take it easy'를 외치며 인종차별을 재치있게 넘겨줍니다. 순진무구한 아이들을 통해서요. 애들이야 뭐, 칭챙총을 외치든 눈을 잡아댕기든 봐줄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뭣하러 화를 낼 것입니까. 알아처먹지도 못하는데. 그런 면에선 이삭감독님이 함정을 판거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인종차별해? 애새끼정도 정신머리구나'라는 함정 말이죠. 그렇다고 처음 본 모니카한테 예쁘다, 큐트하다라고 취급하는 성인들도 썩 좋아보이진 않습니다. 묘하게 쎄한 느낌을 주죠. 길바닥에서 처음 본 강아지한테야 그게 칭찬이지, 생판 처음 봤는데, 같은 어른들끼리 귀여워해? 뭐... 우습게 보겠다 이건가? 모니카는 차라리 주일에 일을 하자는 말로 성경 말씀을 부인합니다. 

 

영화에서 교회의 쓰임새는 결국 생활을 위한 편의시설 정도로 머무릅니다. 어른들이 바쁠 때 아이들을 맡겨놓을 수 있는 곳, 그런 관계를 만들어주는 곳으로 말이죠. 영화 내내 기독교의 종교적인 의식이 의미 있게 다뤄지는 씬은 찾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윤여정 분의 할머니('순자'라고 하네요, 이름이 영화 속에서 등장했나?)는 헌금을 삥땅치는 모습을 통해 교회의 의식을 가벼이 여기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죠. 

 

예수님을 진심으로 섬기는 폴 아저씨도 우스꽝스럽게 그려집니다. 폴이 과장되게 신에게 비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제이콥은 정신이상자 취급을 하고, 헛웃음을 지어버리고 말죠. 특히 그가 주일에 거대한 십자가를 지고 고행을 벌이는 모습은 영화의 방점을 찍어버립니다. 교회의 아이들은 뻐큐를 날리고, '땅바닥에서 자고, 똥밭에서 구르고, 집에 물도 없다(어 이거 완전 마굿간?)'며 비하를 퍼붓습니다. 신앙심이 깊은 모니카도 폴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굴죠. 아니 근데 님들아 그거 예수님이 직접 하신 일인데, 예수님을 믿으면서 그걸 비웃어? 

 

폴 아저씨의 괴상한 인상착의로 말미암아, '이거 뒤에서 배신할 싸이코새끼구만'으로 의심했던 관객들이 있다면,

의미를 희구하는 관객들은 '폴이 예수님을 상징하는 구나~ '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온갖 고난과 역경을 거치면서도 인간을 구해주신 예수님, 그럼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는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진 제이콥 가족들이 폴에 의해 구원받는 서사가 펼쳐지지 않을까'.... 싶죠.

 

하지만 폴의 구마의식에도 나아지는 건 없습니다. 여기서 영화는 관객들의 뒷통수를 후려까는 세련미를 갖추게 됩니다. '의미따위는 없었다'고 선언하며, 자기가 준비한 현실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풀어놓죠. 

 

그러나, 저같이 상징에 집착하는 관객들은 폴의 행군이 영화의 말미에서 반복되는 것을 발견하고 마음이 시원~해졌을 겁니다. 순자는 폴이 십자가를 지고 걸었던 길을 걷습니다. 그의 업보와 가족의 슬픔을 한데 업고 죽을 길을 택하는 순자의 길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골고다 처형 장소에 당도하기 전에 걸었던 '비아 돌로로사'를 읽을 수 있습니다.  

 

라파엘로 - 비아 돌로로사

하지만 어찌감히 인간을 신에 빗댈 수 있을까요. (감독님 이름도 정이삭, 신성모독을 하실 분은 아니겠죠) 폴도, 순자도 한낱 인간에 불과합니다. 모든 죄를 떠안고 홀로 떠나려 했던 순자의 곁에는 어느새 달릴 수 있는 데이빗이 있습니다. 심장이 약해 달리기를 못했던 데이빗은,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성장해 할머니에게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하죠. 순자는 그렇게 같은 인간의 손에서 용서받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인간과 신에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정말 중요한 차이는 '혼자일 수 있는가'인 듯 합니다. 신은 혼자서 세상 모든 이의 죄를 사할 수 있지만, 인간은 제 잘못 하나 감당하지 못하고 다른 누군가의 손길에 구원받아야 하는 존재죠. 이게 인간을 괴롭게 만들고, 또 살게 만드는 요인 아닐까요?

 

<미나리>에서 보여주는 이주민들의 삶은 결코 타인에게서 구원받을 수 없을 것 같은 척박한 정착 환경에서 이루어집니다. 캘리포니아를 떠난 아칸소 인들은 한인교회에 '데여서' 이 척박한 곳까지 내몰렸고, 제이콥도 열심히 재배한 작물들을 팔아보려고 하는데 대도시 한인들이 약속을 어겨버리죠. 가장 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동지들에게 뒷통수를 내어주는 삶 속에서, 이주민들의 세계는 자꾸만 좁아져버립니다. 처음엔 미국, 다음엔 한인 사회, 마지막으로는 가족까지. 한국에서의 삶이 너무 힘들어서, 혼자서는 버틸 수가 없어서 '서로를 구원해주자' 했던 제이콥과 모니카는 끝끝내 자신 하나 구원하지 못하는 관계를 끝내려 하죠.

 

Lee 가족들은 해체 위기까지 다다르지만, 결국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순자'가 보여주고 맙니다. 순자가 홀로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걸 망쳐버리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모든걸 원상복구 시켜놓은 데서 조금 기가 막히고 말았어요. (이미 너무 스포일러를 많이 해서 상세히는 안 쓰려고 합니다)

 

신은 Lee 가족을 구원하지 않습니다. 세간에 유행하는 말처럼 구원은 self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죠. 그저 혼자서는 살 수가 없다는 공포가 서로를 필요로 만들고, 그래서 함께 얼기설기 한데 뭉쳐살아가게 합니다. <사바하>에서 주인공은 '어디 계시나이까'로 서사를 맺으며, 신이 필요한 무력한 인간상을 드러냅니다. <미나리>에서도 신의 강림이 애타게 필요한 무력한 인간들이 나오지만, 어쩐지 <사바하>보다는 힘있는 결말을 맺죠. 그건 아마도 다리 엉키며 살아가는 서로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순자는 거실에서 서로를 부둥켜 안고 살아가는 가족들을 애틋하게 바라봅니다. 신이 그 가족을 내려다본다면, 딱 그 구도겠죠. '여기 계시나이까'라는 질문을 감히 던져봅니다.

 


완벽한 배우 (저 진짜 완벽하다는 말 잘 안씁니다)

2. 왜 한예리가 노미니가 아닌가?

 

이 영화를 본 혹은 볼 사람들은 다들 윤여정 배우님의 수상 예감에 들 떠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저도 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예술판에서 상을 주고 받는 데 굉장히 이질감을 느끼지만... 받는 건 좋은 거죠~ 윤여정 배우님은 '아카데미 소리하는 사람과는 관계를 끊어버릴 것'이라는 반응을 내보였지만, 이렇게 기대감이 고조되는데 사람들이 안 신나고 배기겠습니까. 딱 그 나이대 할머니를 소화해내는 스킬과 섬세한 연출 (프로레슬링을 좋아한다든지, 아이들에게 이상한 걸-화투-가르친다든지, 미국 사람들 뚱뚱한 걸 흉본다든지, 애를 꽤 험하게 다룬다든지, 먹던 걸 뱉어서 준다든지... 진짜 뭐 할머니 관찰기라도 쓰신 것 같음)이 더해지니 금상첨화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예리 배우분이 없다는 데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저 역시 윤여정 배우님의 연기가 얼마나 대단할까 부푼 마음으로 영화관에 갔는데요, 그 부푼 마음을 한예리님이 토옥 하고 터뜨려주셨습니다. 예의 그 차분한 목소리로 '가든 이즈 스몰' 하는데, 거기서 부터 영화의 세계가 나를 허락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저는 멋진 영화라면 완전히 그만의 세계를 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만의 색조와, 냄새와, 언어가 있어야 '아 정말 이 작품은 끝까지 갔구나.' 생각이 들어요. <미나리>도 좋은 작품이라서, <미나리>만의 세계가 꼿꼿하게 서있는 것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어요. 그 입장권을 한예리님이 배부하고 계신거죠. '자 이제 들어오세요~'하고 안내해주는 <미나리> 모니카만의 말투, 행동, 톤... 

 

무엇보다 한예리님이 슬픔을 억누르고 말을 횡경막까지 삼킬 때의 삼키는 목소리 톤이 있는데 그게 너무너무 실감이 나서 미쳐버리게 좋았습니다. 아 진짜.... 미치겠어요. 차분하게 씩씩대는 톤인데, 이 세상에서 그런 연기는 가장 잘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현장에 있었다면 좋아서 그 50 에이커를 데굴데굴 굴러버렸을 것입니다. 스태프 중에 한 명도 그러지 않았다면 다 같이 한예리만의 차분해지는 주술에 홀려버린 게 아닌지? 정말 현실에 모니카라는 사람이 있구나, 내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보고 있는 거구나.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영화에 집중을 안 할 수가 있습니까. 

 

아니 근데 이 분이 여우주연상 후보도 아니라고? 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판...

다른 분들이 너무 잘해서일까요? 이렇게 다른 작품을 보게 만드는 것이 아카데미의 빅픽쳐였을까요? 

역시나 예술에 상은 무의미하구나. 그래도 아쉬우니까 제가 한예리님께 '김규민 인생 최고의 배우' 상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수상목록에 올려두시길... 제가 운이 좋아서 영화일하게 된다면, 제가 꼭 한예리님 헌정 작품을 만들어보이겠어요.

 


3. 끝내주는 소재들

 

잘 만든 영화답게 곳곳에 생각해 볼 소재들이 깔려있습니다.

 

1) 집의 전 주인, 심심할 것 같은 아콘소 촌구석에 계속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재죠. 그래서 지미 어떻게 됐냐고? - 남자답게... 데이빗이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의 식탁씬은 굉장히 신선한 연출이었습니다.

 

2) 화투패, 8월. 8월은 초원을 상징합니다. 데이빗이 든 8월 화투패가 제이콥과 폴이 걷는 초원으로 오버랩되는 게 좀 귀여운 연출이었습니다. 팔광이 언뜻 보였던 것 같은데, 초원을 내려다보는 단독자인 달은 Lee 가족을 내려다보는 그분이 아닐까, 오바를 해봅니다.

 

3) 순자와 제이콥의 수면 위치, 침대에서 혼자 잤던 제이콥은 순자의 곁에서 안정을 되찾고. 마침내 제이콥을 달래줄 수 있었던 어른 순자는 제이콥의 곁에서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버립니다. 서로가 서로를 구원한다는 인간의 생존방식을 집약적으로 보여준 시퀀스죠.

 

4) 바퀴 달린 집, 이주민은 그 넓은 땅을 농사짓고 있어도 결국 집하나 뿌리내리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한다는 게 씁쓸했습니다. 미나리가 제목에서 탈락했다면 <바퀴달린 집>이 제목으로 어울리지 않았을까요. 쓰고 보니 너무 촌스럽네요. 제가 알아서 기각하겠습니다.

 

5) 뱀, 기독교 작품인데 안 나오면 섭섭한 소재 아닌지? 모습을 드러낸 것이 더 안전하다, 숨어있는 것이 더 무서운 법이다... 인간은 위험한 것에 끌려서 늘 보이지 않는 것(꿈이나 신)을 찾으려 하겠죠.

 

6) 가든, 이 정착민의 이야기가 아담과 이브, 에덴동산의 이야기를 따왔다는 데 부정할 사람 없겠죠. 제이콥이 위험을 감수하고 산 이 땅은 미지의 세계이자, 무지의 공간입니다. 제이콥이 죄를 짓자, 그 죄는 끊임없이 업보로 돌아오고. 태초의 인간들은 누군가의 잘못으로 끊임없이 벌을 받습니다. 연대책임이죠. 성경에선 이브의 탐욕이 문제였다면, 여기선 제이콥의 욕심이 원죄입니다. 하지만 잘잘못을 탓하는 걸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제가 성경 공부를 안 해서 너무 아쉽네요. 더 깊은 뜻을 음미할 수 있었을텐데 ㅠㅠ

 

7)  폴의 서사, 따로 쓰려다가 시간이 너무 늦어져서 이렇게 대강 기록해둡니다. 폴은 한국전 참전용사고 신실한 크리스쳔입니다. 그런 그가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제이콥의 밑으로 사정사정해서 들어가는 구도가 참 씁쓸하게 웃기죠. 감독이 입체적인 관점을 보여주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한 인물이라는 티가 났습니다. 아시아인들이 어렵게 사는 것 맞는데. 꼭 백인들이 악의 무리로 그려질 필요는 없죠. 공산당은 나빠요 식의 프로파간다 물도 아니고. 제이콥이 백인 밑에서 눈치보며 근근히 돈을 벌어먹는 것처럼, 백인인 폴도 제이콥 밑에서 성실하게 일해야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제이콥 역시 자기 밑이라고 폴을 깔보고, 폴에게 모니카가 자신의 치부를 말한 것 같자 버럭 화도 내죠. 인간은 인종이 아니라 위치에 의해서 달라지는 것.

 

8) 수컷 병아리, 까만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쓸모 없는 수컷 병아리들이 도살당한 거죠. 제이콥은 아들에게 쓸모 없어지면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쓸모가 없어진 순자도 온통 검은 곳으로 도망치려 합니다. 하지만 끝끝내, 인간은 쓸모로 사는 것이 아니라고, 영화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무슨... 교장 선생님 훈화말씀처럼 이것만, 아니 이게 진짜 마지막, 아니 진짜 막판. 하면서 덧붙이다보니 글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사실 하나하나 잘 풀어서 한 글로 써봤어야 하는데, 그건 나중에 시간이 여유롭다면 해보겠습니다. 책 한 권 쓸 수도 있겠네요.


+ 4. 덧붙이는 말

 

이 영화의 주인공은 데이빗이죠. 당연히 앤은 아닙니다.

그런데 앤의 사연이 참 기구합니다. 부모님은 당연히 몸이 아픈 데이빗에만 관심이 쏠려있고, 할머니도 데이빗이랑 더 잘 놀고. 앤은 뭐 그냥.... 내놓고 키우는 애같아요. 근데 또 알아서 잘 자라네? 당신이 진정한 '미나리'입니다.

 

이거 완전 K-장녀 트리거 아닌지. 영화 속에서야 덤덤하게 상황을 받아들인 것 같지만, 많이 무너졌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저라면 시원하게 사발 깨버리고 '못 산다!' 하고 나왔을 듯. 

심지어 사진도 잘못 들어가 있고 순서도 폴 뒤임. 분기탱천함.

<미나리>는 어디까지나 정이삭 감독님의 자전적인 이야기니까요. 앤의 서사가 안 풀린 것에 대해서 굳이 제가 영화가 잘못됐니 어쨌니 얘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비슷한 가족 구성의 비슷한 위치에서, 짜증이 치밀어오르는 건 멈출 수가 없네요. 아니 앤도 좀 봐주라고! 사실 저 나이에 시골구석 가는게 더 빡친다고... 애 학교는 안 보낼 거냐고... 영화 속에서 앤 챙겨주는 사람 하나도 없고 앤이 챙길 사람은 정말 많아요. 데이빗 아프면 데이빗이 부르지, 할머니 아파도 데이빗이 부르지, 그 와중에 엄마 슬플까봐 걱정해주지. 자꾸 나였다면? ('농사? 어이 아저씨 미쳤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 영화... 과몰입 부르는 이 작품.... 명작이 아닐리 없네요. 관람 정말 추천드립니다.

 

한예리 배우님과 닮은 배우님. 얼굴도 너무너무 맑고 스크린 장악력도 굉장히 훌륭했다. 스크린에서 자주 뵙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