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읽기

사랑도 재능이다

스물 다섯 해를 살면서 생긴 신념, '애한테 잘해주자'다.

노키즈존이 성행하는 한국... 이런 신념을 갖게 된 이유를 가타부타 설명하고 싶진 않다. 원래 그래야 하니까.

하지만 오늘은 조금 솔직해지고 싶다. 나는 칸트가 못 된다.

 

사람들은 약자의 이미지를 사랑한다. 자신에게 절절매고, 무해하고,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니까. 근데 그런 보호나 애정은 그냥 잉여분의 분배에 불과하지, 정의에는 한참 못 미치는 거 아닌가. 그런 사람들은 꼭 약자가 자기보다 나아질 때 치를 떤다. 어떻게 보육원의 아이가 닌텐도 스위치나 아이폰 최신기종을 갖냐는 둥, 어떻게 피해자가 떳떳하게 웃고 다니냐는 둥... 나는 바로 그런 사람들이 너무 구차해 보여서 그러지 않기로 했다.

 

애한테는 잘해줘야 한다. 우리는 어릴 적 타인에게 받은 상처를 일생에 걸쳐 떨쳐낸다.

 

나도 나를 설명할 때에 꼭 들어가는 문장들 팔할이 어린 시절의 대못같은 말들이다. 

우리 반에서 제일 뚱뚱한 애, 네 작품에는 별 게 없다, 네가 무슨 수학의 정석을 푸냐는 둥...

 

근데 또 나머지 두할 중 일할은 내가 남한테 상처 준 기억이다. 

나는 억지로 나를 상처입힌 말을 주억대며 곱씹지만, 횡경막을 문득문득 쳐대는 죄책감의 발로에는 맥이 풀려버린다.

어쩌면 고작 그 10퍼센트가 억지로 억지로 쓰러지는 나를 끌고 가는지도 모른다.

'이대로 나쁜 년으로 끝날 수 없다'는 구질구질한 욕망.

 

나는 누군가의 상처를 돌이켰을 때 그나마 주먹에 힘을 실어줄 말을 해주고 싶다.

그게 내가 숨 쉬는 마지막 일할이니까.

아무리 나쁜 년으로 끝나지 말자는 말로 일으켜 세워도, 그 말들이 폐를 옥죄어서 풀썩 주저 앉아 버리는 순간들이 있다. 

그때, 일으킨다...까진 아니더라도 그냥 숨 붙여주는 몇 마디가 있다. 

요즘에는 지금보다는 쪼끔 어린 시절 친구가 내게 해줬던 '나는 규민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어'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때도 사지 건장한 성인이었지만, 지금보다는 또 어렸어서 그런 애정이 얼마나 잘 기억에 남던지.

 

나는 그래서 어떤지 모르는,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보다도, 나보다 어린 사람들한테 나와 같다는 건방진 유비추론을 시도하고 있는 것 같다. 나도 그땐 그랬으니까, 너도 그럴 수 있겠지라는...

사실 이것도 정의엔 한참 못 미치지만, 적어도 그와 나 사이의 위계를 공고히 하려는 개수작질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나는 내 옛날을 사는 아이에게 꼭 사랑을 주고 싶다.

 

내가 받지 못한 만큼의 사랑을 넘치도록 줘서, 꼭 그 아이만큼은 분에 넘치는 사랑을 느꼈으면 좋겠다.

 

그럼 내게 적잖이 위로가 될 것 같다.

 

어른들은 힘든 일 잊기 급급하지만, 아이들은 모든 걸 기억한다.

그게 아이들의 저주라면 저주고, 특권이라면 특권이다. 

부부싸움을 하는 부모들이 가장 놀란다. 아이가 4-5살 때 들었던 악에 받친 말들을 모조리 기억했을 때...

사람들은 아이들이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아이들에게는 꼭 찰나의 진심 어린 말들을 한다. 그게 분노든 사랑이든.

 

사랑도 다른 능력과 비슷해서, 가정환경이든, 본인의 기질이든, 노력이든 뭐든 반영이 된다.

천성이 사랑 넘치는 사람들이 있고, 또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대체로 유년기에 넘치는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그 태가 난다. 

천성도 아니고 경험도 없다면? 안타깝지만 일생을 툴툴거릴 확률이 높다.

그래도 노력해야 한다. 사람은 그래서 어떻게 됐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럼에도 어떻게 됐다는 게 더 중요하다. 

 

사랑도 재능이라서, 인생의 많은 조건들처럼 우리를 괴롭게 만든다.

노골적으로 스탯창에 뜨지 않아서 그렇지. 어떤 사람의 결에 사랑이라는 건 너무너무 중요해서, 거진 인생의 만족도를 결정해버린다. 

 

어떤 사람들은 받지 못한 사랑을 찾아서 애써가며 이성의 관심을 끌려하고, 어떤 사람들은 사랑 받지 못한 경험을 극복하지 못해서 '신포도 작전'을 구사한다. 사랑받는 사람들을 손가락질 하며... 

 

그게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건 너무 뻔한 말이니까 그냥 흘리고 말겠다.

그래도 찬찬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자신의 인생에 왜 이렇게 사랑이 부족한 것인지...

 

사실 그건 당신보다 타인의 탓일 확률이 굉장히 크다. 

대개는 부모일 것이고, 어쩌면 학급 친구일 것이고, 지나가던 미친놈일 수도 있다...

그래도 중요한 건 그 사람들을 다시 붙잡아서 당신을 사랑해달라 요구할 수는 없다는 거다.

그 인간들이 주고 간 슬픔은 어떻게든 내 안에서 하수종말처리장까지 운반해야 된다...

 

그럼 그냥 나를 닮은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면 된다.

인간들의 세계는 거울세계 같아서, 우리는 다른 누군가를 볼 때 꼭 우리를 본다.

그래서 나의 못난 점을 닮은 그를 싫어하고, 나와 비슷한 누군가에게 연민을 느낀다.

 

그니까 누군가의 사랑을 받지 못한 나를 사랑하기 어렵다면,

그냥 나랑 엇비슷한 누군가에게 사랑을 줘보자.

반사뎀이라서 나한테 다시 올거다. 언젠간 꼭. 살아있으면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