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노래: 비발디, 나의 사랑하는 님 만나리 (Vedro con mio diletto)
지수 씨는 일요일, 오픈 시간에 돼지갈비를 두 판째 먹고 있었다.
스무살 지수 씨가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 어떻게 저런 몸으로 애를 가졌을까 싶었다. 아니면 저런 몸이라서 삼촌의 애를 가질 수 있었던 걸까? 삼촌의 나중 행보를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후식을 먹을 때 즈음, 지수 씨의 동서는 그의 몸을 보며 한마디씩 꼭 덧붙였다. “아직도 처녀 때 생각해서 관리해?” 엄마의 묘한 말에도 지수 씨는 그저 수줍게, 자랑이 묻어나는 웃음을 지었다. 어색하게 굳어있던 안면에 혈기가 도는 건, 명절 연휴 2박 3일 중 딱 그 한순간뿐이었다. 지수 씨의 동서들은 바삐 눈을 맞춰댔다. 지수 씨는 그 눈맞춤을 알지 못해서, 수치가 없는 여자였다. 그저 특유의 아둔한 표정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포도나 석류 따위를 열심히 집어먹었다. 나머지 시간에 지수 씨는 집안일을 돕겠다고 주방을 서성댔다. 그리고 밤이 되면 아주 작은 방에 들어가 삼촌을 똑 닮은 딸과 함께 잤다. 삼촌은 환기가 안 되는 방에선 잠을 잘 수가 없다며, 자기의 집으로 돌아가서 아침 늦게서야 돌아왔다.
어느 추석 때 삼촌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날 지수 씨는 엉엉 울며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억울하다고, 자기는 억울하다고 쉰 소리를 냈다. 삼촌은 다음 설날에 돌아왔고, 할아버지는 돌아왔으니 마음 잡고 잘 살라는 덕담을 남겨주었다. 그해 추석 지수 씨는 몰라보게 뚱뚱한 몸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지수 씨도 추석 다음 날에 사라졌다. 친정에 갈 수도 없으면서. 지수 씨의 딸만 우리와 고물 컴퓨터에서 뿌요뿌요를 했는데, 그 아이는 영 재능이 없었고 흥미도 없었다. 어느새 걔는 문 쪽으로 밀려서 가만히 우리가 하는 걸 지켜보게만 됐다. 우리 엄마랑 큰 엄마가 거실 한 켠에서 속닥이는 소리가 샜다. ‘저러니까...’ ‘남편이 쉬워진 거지.’ 지수 씨의 딸은 점점 문 쪽으로 다가가 있었다.
이듬해 설날, 지수 씨는 오지 않았다. 이번엔 삼촌과 지수 씨의 딸이, 꼭 옛날의 지수 씨를 데려왔다. 삼촌은 점잔을 빼며 그를 인사 시켰고, 지수 씨의 딸은 멀찍이 서 있다 혼자 방으로 들어갔다. 그해 추석에 지수 씨가 돌아왔다. 바싹 마른 몸으로, 그는 선언했다. 기독교인이 되었고, 채식주의자가 되어 제사상을 차릴 수 없다고. 이미 이야기가 된 건지 삼촌은 탐탁지 않은 입매를 삐죽대기만 할 뿐이었고. 교양있는 우리 일가 친척은 윽박도 지르지 않고 그렇게 하라고 했다. 지수 씨는 2박 3일 내내, 딸과 함께, 거실에서 티비를 보았다. 물론 그의 선언대로 음식엔 조금도 손대지 않았다. 그렇게 좋아하던 과일도 일절 쳐다보지 않았다. 가부좌를 틀고 결연히 티비를 보는 모습이 불상 같았다. 삼촌들과 함께 거실 한 가운데를 지키고 있는 그의 주변에서,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다섯 번의 해가 지나도록, 지수 씨는 단 한 입도 들지 않았다.
추석 전날이 일요일인 적이 있었다. 행사를 한다는 친구의 말에 그의 고기무한리필 집으로 일손을 거들러 갔다. 오픈한 지 조금 지나서 갔는데, 거기. 이미 지수 씨가 있었다. 그는 쟁의를 벌이는 민중투사같은 표정으로, 고기를 우악스럽게 집어먹고 있었다. 그 마른 몸에, 고기가 쉴 새 없이 들어갔다. 샐러드바 근처엔 가지도 않고, 오로지 고기만, 고기만 구웠다. 분명 지수 씨도 날 보았다.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는 그의 페이스대로 가게에서 약속한 시간을 채웠고, 마지막에 도장이 잔뜩 찍힌 카드를 내밀었다. 한번 올 때마다 하나씩 도장을 찍어주는 마일리지 카드에, 이미 10개의 도장이 찍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