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오면 센토사를 떠나야 해(2)>
나는 나름대로 사람에 대해 철학이 있다. 감정에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고 뒤돌아선 모두가 상대를 싫어하는 순간을 가질 것이라고. ‘사랑하라’ 떠들어대는 사람이나, ‘성공할 사람, 실패할 사람’을 나누어 강연을 벌이는 사람이나. 사람에 통달한 것처럼 떠드는 사람은 많아도 막상 ‘자신의’ 순간이 찾아오면 절절매는 순간이 올 거라고. 남의 문제는 대화의 순간 촉발되는 기막힌 통찰로 값싸게 풀어내지만, 내 문제로 돌아오는 순간 우리는 모두 머리가 하얗게 새고 만다.
(1)
나는 인스타그램을 써본 적이 없어.
연화가 선지국을 먹기 위해 흘러내리는 머리를 귀 뒤로 바쁘게 넘겼다.
“머리끈을 가지고 오던가...”
“아 끊어졌다고 몇 번 말하냐, 머리숱을 안 쳐서 지금 난장판이라고. 안 묶여 이거. 그래서, 뭐라고? 인스타를 갑자기 해보고 싶어졌어? 너 그런 거에 취미 없잖아”
“이제 대학도 들어가야 하고 그럼... 뭐 사람 사는 거 구경하고... 친해지려면 다들 그렇게 하는 거 아냐?”
나보다 먼저 대학에 들어간 연화와는 미술학원에서 친해져 재수할 때도 간간히 연락을 주고 받았다. 연화와 나는 미술은 한다는 것 외엔 딱히 접점이 없었지만 우리 또래 관계라는 게 으레 그렇듯, 입시를 같이 거치고 시간을 적당히 함께하면 못 친해질 것도 없었다. 우리 대화는 늘상 무미건조했지만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건 10대 청소년에겐 꽤나 큰 의미였다. 나는 연화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았고 연화 역시 내가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하지 않는지 알고 있었다. sns는 연화가 지적한 대로, 내가 하지 않는 것 중 하나였다.
연화는 크게 부풀어진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제대로 선지를 건져 먹기 위해 연신 숟가락을 휘적댔다.
“웃기지도 않는다. 야 대학이 사람을 바꿔놓네”
“뭘 바꿔놔...”
“너 사람들한테 니 작품 보여주는 것도 싫어했잖아. 근데 너를 전시한다고? 불특정 다수에게?”
“내 사진은 안 올리면 되잖아”
“엥? 무슨 소리야 아... 뭐 구독계 이런 거 만들려고 그러는 거야?”
“뭐 그렇지”
구독계가 뭔진 모르겠지만.
“너 뭐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생겼냐?”
“왜 이렇게 맥락이 없는 이야기를 해?”
“원래 다들 그러더라고, 짝사랑하는 사람 염탐하려고 구독계도 파고. 음침하게 맨날 그 인간 뭐하나 들여다보고. 그러면서 자기 신상은 드러내기 싫고.”
“그게 싫다는 말투네?”
“좋겠니? 우스워 죽겠어 진짜. 이미 구닥다리 말이지만, 자기PR 시대니 뭐니 해서 SNS고 뭐시깽이고 하는 거잖아. 다들 얼굴 들이밀고 셀카 전시해두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한텐 안 들키고 사랑을 해보시겠다니. 자존심 지키려고 뭔들 못 하겠냐만은, 우습지 않아?”
연화는 술이 덜 깬 듯 연신 선짓국을 떠마시며 맥락이 끊기는 말을 힘들여 이어갔다. 온점 사이에 삽입된, 선지국 굴러가는 소리가 거슬렸다.
“너는 왜 매사에 그렇게 부정적이야.”
“이런 세상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건 나 같은 인간에 대한 기만이야.”
끄윽 소리를 내며 그릇을 내려놓는 연화의 머리카락엔 끝내 국물 방울이 몇 개 맺혀있었다. 부산스러운 머리 넘김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나도 꽤나 시니컬한 인간이지만, 연화에 비할 바가 못 됐다. 그는 되는 대로 지껄였고,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엿이나 먹으라’며 고개를 돌릴 인간이었다. 속내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생겼어? 좋아하는 사람”
연화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수저로 깍두기 국물을 휘적거렸다. 하지만 목소리는 내심 기대를 품고 있었다. 같은 부류의 연애사는 일말의 희망이라도 되니까, 그래서였겠지.
“아니야. 그런거. 근데 궁금한 사람이 생기긴 했어. 인스타가 사람 찾기 좋다며.”
“흠 그래? 연애적인 의미는 아니란 거지?”
“아니지, 그냥 연락 끊겼던 언니.”
“그래? 그 언니를 같이 아는 사람도 있어?”
“그건 왜?”
“그래야 찾기 편하거든.”
연화의 말은 즉슨, 같이 아는 사람이 많은 순으로 검색창에 뜨거나 아니면 아는 사람의 팔로잉을 타고 타다 보면 목표한 사람을 더 찾기 쉽다는 뜻이었다.
“되게 개방적인 척하는데 폐쇄적인 곳이네.”
“그렇지, 이게 또 하나의 헤게모니 아니겠어?”
킬킬대며 인스타그램을 비웃는 연화는 대학에서 구를대로 구른 인간처럼 보였다. 고작 2학년이 된 애가 인간관계에 통달한 듯(그의 말을 비춰봤을 때 인스타는 대학생활의 거의 전부였음으로) 구는 게 웃겼지만 나는 그를 비웃지 않았다.
“아마도 많을 거야. 이번에 들어가는 대학 선배기도 하거든. 아는 오빠 전 애인이었고.”
“그러면 거의 친척이나 다름이 없네. 이 조그만한 세상에 그 정도 인연이면 엄청난 거잖아”
“그런가...”
연화의 말에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내심 대학이 해방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또 나를 기다리는 건 피상적인 관계 몇몇으로 연결된 아주 자그마한 세계구나. 특히나 대상이 수정 언니라니, 언니는 그때도 내겐 너무 큰 사람이었고 그래서 내 세상을 집어삼키는 것만 같았다. 때마침 심장도 수축할 때가 된 건지 가득 피를 쥐어 삼켰다. 무섭다. 또 내가 아는 자질구레한 세계가 펼쳐질까봐.
“그런데 궁금하다 그 언니”
“왜?”
“너가 사람한테 관심 갖는 게 신기해서”
비죽거리는 연화는 섭섭한 것처럼도 보였고, 그저 말 그대로 신기한 것처럼도 보였다.
“그 사람이야.”
“ ‘그’ 라는 지시어는 참 편리하다 안 그러냐.”
“최수정”
연화는 깍두기 국물을 퍼담던 숟가락질을 잠시 멈추었다. 볼살을 이빨 사이로 끼어놓고 입을 비죽거리다가, 순간 미간을 팍 당겼다.
“왜?”
“뭐가 왜야.”
“왜 죽은 사람 계정을 찾으려 드냐고, 재수없게.”
“말했잖아, 궁금한 사람이라고.”
“뭐가 궁금해, 궁금할 게 뭐가 있어? 만나지도 않고, 만날 것도 아니고. 만날 수 있는 것도 더더욱 아니고.”
“그래서 염탐하는 거 안 들키고 좋네.”
“징하다... 내가 본 사람 중에 제일 음침하네 너가.”
“뭐가 또 음침해, 생각나서 찾아보겠다는데.”
연화는 목구멍 깊은 곳에서 킬킬대는 소리를 냈다.
“뭐가 웃겨.”
“아... 뭐 확인사살? 해보는 것 같기도 하고...”
“확인사살?”
“니가 아무리 날 괴롭혀봤자, 넌 이미 뒤졌다~ 이런 거?”
“죽은 사람을 두고 그런 말을 하냐.”
“넌 그럼 그렇게 씹어대던 인간 죽었다니까 갑자기 왜 찾아보려고 드냐? 뭐 좋아했다고”
“그냥 궁금하다고.”
“씨발! 그냥이라는 게 어딨냐고.”
갑자기 가게의 소음과는 맞지 않는, 튀는 데시벨이 울리자 몇 없던 새벽 손님들의 고개가 우리쪽을 향했다.
연화는 남의 시선따위는 게의치 않는다는 듯, 연신 헝클어진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그만의 화를 삭히는 의식이었다.
“너 말야, 내가 오래봤지만 그럴때가 제일 짜증나.”
“뭐.”
“따박따박 사람 대꾸는 해주면서 뭐든 관심없는 척 하는 거, 그냥 이유 없다는 듯이 구는 거.”
“그게 왜 짜증이 나.”
“가끔 진짜 사회성 떨어져보여, 음습하고 찌질하다고.”
“너처럼 막말하는 건 대단히 사회성 높은 거고?”
가시 돋힌 말이 오고 갔지만 연화는 별 무게를 두지 않는 듯 노골적인 공격을 이어갔다.
“너 제발 대학 가면 그 버릇 좀 고쳐, 아닌 척 하는 거말야. 너 그냥 평범한 사람이야. 인생 무상한 척 안 굴어도 괜찮은 거라고.”
“나는 그냥 하고 싶은 걸 하는 거야.”
“넌 니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거야.”
‘내가 그렇게 싫으면 안 보면 되잖아.’
라는 말이 목울대를 쳐댔지만, 끝내는 삼켰다. 그 말을 뱉는 순간 연화의 말이 증명되니까, ‘친구 따위는, 너 따위는 없어도 돼’라고 말하는 건 사실 정말... 괜찮지 않으니까. 몇 없는 친구관계에 구질구질하게 구는 게 맞는 선택지일테니까. 그걸 부러 부정하는 건 연화 말대로 억지로 시니컬해지는 걸테니까.
“야.”
“왜.”
“제발 니 인생 살아. 말같지도 않은 미술 선생 딸한테 열등감 느끼지 말고.”
“...”
“간다. 1교시 수업이라 가서 자야돼.”
연화는 제 선짓국 값을 두고는 자리를 떠났다. 어기적거리며 떠나는 뒷모습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나는 수정 언니의 흔적을 왜 찾고 싶은 걸까. 연화의 말처럼 억지로 무심한 척 하는 걸까, 이유를 대면하고 싶지 않은 걸까. 이유를 대지 않는 이유를 또 생각하며, 나는 또 미니언즈의 기차놀이를 떠올렸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땅에 박혀버린 수정 언니... 거실 한 가운데에 주렁주렁 매달린 최인환의 그림... 재수 내 잊고 있던 음습한 감정들이 뇌를 비집고 나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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