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있는 음악을 써본적 없다. 이야기가 내겐 사치같았다.
시끄러운 건 돈이 된다. 어찌됐든 사람이 몰려있는 곳에 끼어들어야 돈이 생기니까. 맞지 않는 바지를 입을 때면 한번씩 허리춤을 잡아당기는 것처럼, 돈을 벌 때면 하루에 한번씩은 조용한 곳에 가야했다. 담배도 그래서 배웠다. 그나마 조용한 곳이 흡연실이었으니까. 담배의 좋은 점은 또 있었다. 매캐한 걸 깊이 들이 마시면 내 기도가 어디쯤에 있는지 내 폐는 또 어디쯤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숨이 막힐 때면 언젠가 담배를 필 때 느꼈던 기도와 폐의 위치를 가만히 생각한 다음 의식적으로 정신을 차리곤 했다. 왜 가위에 눌리면 발가락부터 움직이는 것처럼 하나씩…
그래도 네가 있고 난 뒤부터는 담배가 별 필요가 없었다.
네가 은근히 싫어하는 티를 내기도 했지만, 정말 별 쓸모가 없었다.
조용한 곳에 너랑 둘이면 숨이 막히는 일은 없었다. 학자금이나 아버지의 빚이나 동생들 생활비나… 그런게 없는 공간 같았다.
일주일에 두 번 너랑 만날 때 숨을 크게 들이 마신 뒤에, 남은 날들 중간중간에 적당히 공기를 빼는 그런 생활의 반복이었다.
누군가 자꾸 내 목을 조르는 것 같아. 조금이라도 기도가 눌리면 그대로 죽어버릴 것 같다. 사는게 나한테는 너무 버거운 일이었다.
나는 내가 가진 건 단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족도, 애매한 재능도, 노력부족이라며 비굴한 변명을 덧붙이는 것도.
언젠가 잠을 자다가 목을 세게 누른 적이 있다. 그 압박감이 의외로 안정적이라서, 불에 덴 것처럼 손을 뗐다. 죽는다는 게 부지불식간에 찾아 올 것 같았다. 이불도 목까지 못 올리고, 목폴라는 당연히 못 입고, 넥타이는 말도 안 된다. 넥타이 같은 걸 멨다가는 어느 순간 끝자락을 고리에 매달고 죽어버릴 거다. 목이 늘어난 티셔츠는 어쩔 수 없는 거였다. 네가 싫어하는 것 같았지만…
네가 싫어하는 건 담배나 목이 늘어난 티셔츠만은 아니었을 거다. 너는 데이트가 끝난 뒤면 꼭 내 허벅지를 긁어댔는데, 그럴때면 난 오늘은 뭘 잘못했나 곰곰이 생각했다. 약간 심통난 네 표정에 겁이 나서 내 나름의 추측도 못 내놨지만. 나는 혼자 반성하고 있었다. 부러 오답을 말해 분란을 만들고 싶진 않으니까, 나는 기다리는 것만큼은 제일 잘하니까. 네가 답을 말해줄 때까지 기다리고 싶었다.
네가 몰래 내 음악을 들었을 때도. 처음으로 좋아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멋대로 기다렸다.
그래봤자 노래가 좋다는 거겠지만, 어쨌든 그것도 나니깐.
네가 난해하다고 했을 때 애써 무너지는 표정을 추켜 세웠다. 그리곤 그 자리에서 지워버렸다. 네가 열어본 것들은 다. 나름 좋게 들렸는데 네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다 너무 끔찍해보였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말을 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좋지 않느냐는 둥, 무슨 의도가 담겼다는 둥 같잖은 음악가 행세를 했으면 너무 추했을 거야.
내 취향 같은 건 말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돈이 궁해 이런 싸구려 취미를 즐길까 생각할까봐.
나는 입을 닫았다.
네가 마지막 날에 들고 온 머플러도 내가 부러 밀어낸 취향 같았다.
해 보지도 않아놓고, 못 잡아둘 걸 알아서 놓쳐버리는
비싼 값을 치뤄야 하는 그런 것들.
네가 쉽게 사 들고 온 머플러는
감기도 전에 내 멱살을 조였다.
척 봐도 비싸보이고,
애정없는
그래서 우리 관계를 차갑게 정의하는.
‘나는 목이 답답한 게 싫어. 그래서 목걸이도 안 해. 이렇게 비싼 머플러를 주면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어. 메지도 않을 건데…’
칭얼거림을 리조또와 흘려보냈다.
내가 널 사랑하니까.
움켜쥐면 흩어지겠지만, 느슨하게 감아두면 곁에는 남을테니까.
너는 유독 말이 없었다. 내가 선물을 안 줘서 일까? 별 건 아니지만 나도 준비한게 있었다. 수족냉증이 심하니까, 온열매트를 사왔다. 무거우니까, 집에 돌아갈 때 쯤에 줘야지. 내가 집 앞까지 들고 갔다가 놀래켜 줘야지. 초조해 보이는 네 얼굴이 가학심을 불러일으켜서, 네가 셈을 하는 게 눈에 훤히 보이는데, 그게 또 귀여워서. 하지도 않던 장난을 쳐보고 싶었다. 그늘은 끝까지 내가 놀려보고 싶었다. 평소에 놀리는 건 네 전담이니까. 그날만큼은 내가 놀려보고 싶었다.
그날만큼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평소처럼 파슬리가 우스꽝스럽게 이에 묻을까 치워두고 있었는데,
너는 갑자기 울었다. 한참을 정신없게 울다가, 숨이 멎을 듯이 희끅대다가, 헤어지자고 했다.
나는 더이상 무슨 말도 할 수 없어서
그러자고 했다.
너한테는 내가 늘 너무 늦었다. 그날도 그렇고, 처음 만난 날에도.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당장은 연락을 못해요. 혹시 다른 sns계정같은 건 없어요? 컴퓨터로라도 할 게요.”
먼저 말을 했어야 한다.
“너가 준 번호 쪽지 잃어버리고, 너랑 연락할 방법 찾으려고 얼마나 노력한 줄 알아? 운영진은 개인정보라고 안 알려주지… 너랑 나 같이 아는 사람도 없지, 나 너 정말 좋아해. 나 정말 노력했어. 처음 본 순간부터 쭉.”
이런 유치한 말을 했어야 한다.
“너 손발 시려울까봐 걱정해서… 이번 겨울이 유난히 춥대.”
“2년동안 날 만나줘서 고마워”
“정말 사랑해”
마지막 날까지 나는 너무 늦어서, 하고싶은 말이 많았는데 하질 못했다.
네가 자꾸 내 다리에 남긴 빨간 줄이 생각나서, 가끔씩 악보에 긴 이음줄을 그리곤 한다. 낮은 포물선으로 음계를 스쳐가는 이음줄이 꼭 우리 연애같아서. 내가 평생을 해먹고 살아야 하는 음악에 네가 깊게 파여서. 하고싶은 말이 점점 무거워져만 간다.
그러니까, 다시 만나도 할 수 있는 말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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