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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

 

후욱

!”

 

아무리 불어도 도대체 커지지가 않는다. 오늘 낮에 본 종수 놈의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지가 않는다고.

 

개자식. 그런 걸 학교에까지 가져올 이유는 뭐람?

주말에 놀이공원을 갈 거니 말 거니 할 때부터 신경을 거슬리게 하더니, 거기서 너구리 풍선까지 들고 왔다. 그것도 뜨는 거로!

 

거들먹거리는 얼굴에 한마디 쏘아주기라도 했어야 했는데.

지한테 잘 보이는 애들한테 그 헬륨이니 하는 걸 먹일 땐 정말 가관이었다.

조무래기들 몇 명 모여서 되도 않게 이상한 목소리 하나로 우월감을 부리는 꼬락서니하곤.

 

종수 놈도 지금쯤 그 넓다던 제 방에서 쭈글쭈글해진 풍선을 부여잡고 있을까?

 

후우욱!”

한 번 더 세차게 입김을 불어본다.

구멍이 이렇게 커서는 도저히 공기가 차질 않는다. 들어가는 족족 어디로 빠져나가 버린다.

 

얘 여기서 뭐하니?”

 

낯선 목소리가 들린다.

그 말에 옷에서 고개를 빼봤더니, 안경을 쓴 언니가 코끝이 벌게진 채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안 추워? 뭐 하는 거야?”

“...”

여기가 네 집이야?”

 

언니는 김 서린 안경 너머로 내 뒤를 쳐다보았다.

 

제집 아니고 아빠 집이에요.”

?”

아빠 꺼.”

 

남이 이렇게 말을 걸어올 때면 목이 졸리는 것 같다.

 

언젠가 바다에 갔을 때 꼭 이랬는데.

엄마는 속이 뻥 뚫린다 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바다가 몰려올 때나, 파도가 귀를 마구 칠 때마다 누군가가 쫓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마구 쫓아오다 봐준다는 듯이 뒤로 슬쩍 물러나는, 얍살시러운 웅덩이가 내 세계를 마구 휘저어 놓을까 겁이 났다.

 

그렇게 무서운 기분이 들 때면 나는 또 내 방으로 숨어버려야 한다. 종수네 방처럼 넓다라진 않아도 언제고 찾아갈 수 있는 내 방.

 

그러니까 여기가 너가 사는 곳인 거지?”

“...”

 

집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언니,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무섭다. 보통 이런 감은 꼭 들어맞으니까, 난 또 내 방으로 숨어 들어가야 한다.

 

, 고개 좀 빼봐. 옷 다 늘어나잖아.”

저는 여기서 살아요.”

그래 여기서 사니까 너 집이지.”

아뇨 아뇨. 여기.”

 

티셔츠의 목을 죽 늘어뜨리고 애써 설명을 해도 언니는 통 이해를 못 한다.

 

가만히 있어 봐, 언니가 옷 좀 들춰볼게. 괜찮지?”

 

언니는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나를 돌려본다. 경악스러운 눈썹이 주욱 귀밑으로 늘어진다.

 

안 아파?”

별로.”

일단 이거 입어봐.”

 

언니가 제 코트를 벗어다 내 어깨에 두른다. 코트의 널찍한 어깨선이 추욱 늘어진다. 어설프게 옷 무더기에 쌓여있으려니 마음이 소란하다. 언니가 핸드폰을 들고 어딘가에 전화하는 모습도 마뜩잖다. 별로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진 않거든.

 

언니의 방에는 언니 하나가 데워놓은 잔열이 있다. 그래도 이렇게 넓으면 내 입김으로 도무지 더 데워지지 않는다. 이래서 엄마가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 했을까?

 

아니나 다를까, 경찰차 한 대가 들이 닥친다. 나는 꼭 이 사이렌 소리를 바다에서 들었던 것만 같아. 거품 사이로 세차게 지나가는 바람들이 이런 비명을 내지 않던가.

 

씨발 내가 내 딸 교육 시키겠다는데 니들이 뭐야! 니가 얘 엄마야?”

아저씨, 경찰서 가서 얘기하세요.”

경찰서? 어디 부모 자식일에 경찰을 불러? 니년은 부모도 없어? ! 썅년아! 누가 그딴 거 입으래? 안 벗어?”

 

아빠는 마구 나를 다그치더니 어깨를 휘어잡고 언니의 코트를 벗겨낸다. 경찰 둘이 와서 말리는데 별 소용은 없다. 옥신각신. 오히려 그 소란에 입고 있던 내 얇은 잠옷 벽만 쟈작소리를 내며 금이 간다.

 

나는 눈을 감는다.

크게 한번 숨을 마시고 참는다.

샐 틈이 없는 허파에 공기가 꾹꾹 눌러 담긴다.

내 작은 방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이대로면 나도 너구리 풍선처럼 뜰 수 있지 않을까? 내 작은 방이 작아지고 작아져서, 공기만큼이나 가벼워지면, 헬륨만큼이나 가벼워지면.

 

지표면에서 톡톡발이 떨어진다.

나도 이제 종수처럼 이상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아무래도 그건 확인하기 어렵다. 공기가 새어 나가면 안 되니까, 아빠가 들으면 안 되니까 꼭 목구멍을 막아 낼 거다.

 

점점 멀어지는 것들이 얼마나 작아지는지!

종수 놈이 으스대던 종수의 방도, 아빠가 자랑하던 아빠의 집도, 전부일 것만 같던 바다도.

 

내 작은 방은 올라갈수록 커진다.

그따위 것들은 비교도 안 되게 커진다.

 


학교 수업 과제로 낼까 생각중인 단편소설입니다.

에센스만 적어서 내라는데 주저리주저리 길어졌네요.

 

전 소설을 쓸 때 여러가지 이어지게 쓰는 타입인데, 여러분이 보시기에 눈에 들어오는지 궁금합니다.

촌스럽게 청승떨고 싶지 않았는데 그렇게 보일까봐 무섭기도 하고요.

 

아무튼 이 글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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