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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읽기

도움닫기를 너무 많이해서 뛸 엄두가 안 나는거지

이 말은 나의 친애하는 동료 우석 군이 해주었다.

우석이는 거부할 수도 있겠지만, 우석이를 보면 내 2년 전이 생각난다. 꼰대 같은 소리 하는 거 아니니깐 잠깐만 뒤로 가기 누르지 말아봐.

어제 전화를 하다가 우리 서로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말하였는데, 나는 그가 나의 어떤 면을 보고 달라졌다 평가하는지 모르겠고, 그 역시 어떤 점에서 이렇게나 달라졌는지 말하기가 어렵다. 쉽게 말하면 군대 다녀와서 그런거겠지? 나는 군대도 안 갔다왔는데 머고? 나는 사랑을 했다.

아~ 유치해라~
그래서 누굴 사랑했고 어쨌고 얘기를 팔아먹기에 나는 용기가 없다. 내 감정은 오로지 걔 것이니 거기에 두는 게 옳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랑한 사람의 이름을 빌려다 수 해를 먹고 사는지. 나는 자칫 걔가 날 더 싫어하게 될까봐 무섭고 무서워서, 내가 준 감정이 가벼워질까봐 걱정이 되어서 글로 남기지 못하겠다.

그니까 사랑을 했다느니 어쨌다느니는 여기서 멈추고…

우석이는 2년 전에 내가 그랬듯이 옛날보단 좀 더 냉소적이고 무게 안 두고 호쾌하게 생각하고 그런다 요새. 나는 어쩐 일인지 퇴보하여 찌질대고, 고민 많아지고, 쿨하게 생각 못 하겠고, 곁눈질로 옆사람을 흘긋되게 된다. 그래서인지 우석이가 일갈한다. 정신 차리라고.

시간도 어쩌면 이렇게 느리게 흐르는지. 매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니, 하루에 온통 그 생각으로 돌아가는 도돌이표만 여러 개라 고작 두 달이 지났는데 관악의 사람들이 사무치게 그립다.

우석이도 2년 후에 이렇게 될까. 나는 요새 우석이를 보면서 2년 전의 무심했던 내가 너무 부러워진다. 지금의 나는 터무니없이 감정적이다. 법을 공부하면서 이런 마음을 가져도 될까, 죄책감도 들고. 지금의 나는 무엇으로 사냐 하면 남은 추억을 빌어먹고 산다. 내 추억도 아닌 누군가의 추억을 빌어먹고 싶어서 자꾸 사람을 찾고,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하고… 잠시라도 혼자가 되기 싫어서. 사실은 원래부터 혼자였고 쭉 혼자였지만 아닌 척 세뇌를 하고 싶어서 이런 글도 멀리 했다.

흉부를 끄집어 열고 심장의 아득한 저편을 바라볼 때면 혼자인 내가 불쌍하게 서있다.

잠깐 그 아이 생각이 안 나다가, 또 자꾸 그 아이 생각이 나다가. 많이 닳아진 것 같다가, 생경한 감각에 정신이 번쩍 나다가…

우석이한테는 혼잣말을 하게 된다. 그럼 우석이는 잠시 그 얘기를 듣다가 왜이렇게 생각이 많냐고 한다. 누나는 도움닫기를 너무 많이 해서 정작 뛸 엄두를 못 내는 거라고. 맞아, 뛰는 건 뜀틀도 필요하고 끝도 마주봐야 하는데 도움닫기는 혼자서도 할 수 있으니까. 그건 결과를 유보할 수 있으니까, 트랙이 닳아질 때까지 나는 뛸 수가 있다.

이제는 뛰어넘을 뜀틀도 없고. 나 혼자서 언제 다시 올 지 모르는 누군가를 향해 하염없이 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