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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읽기

칼국수가 merge?

사람들 너한테 그렇게까지 신경 안 써.
 
이 한 문장이 내 과격한 청년기를 정의하는 말이었다. 일반적인 여성상에서 크게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다들 그렇게까지 신경쓰겠어?'하는 믿음 덕분이었고, 나도 사실 남들한테 별 관심이 없다. 기억력이 그런거 하나하나 다 챙길만큼 좋지도 않았다. 내 관심사만 신경쓰기에도 나는 충분히 산만한 애였으니까.
 
하지만 놀랍게도 사람들 특히 이 좁은 한국 사회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신경을 쓰고 산다. 이걸 점점 알아갈 때 나는 서스펜스의 작렬을, 불행히도, 나혼자서만 아주 느린 시차로 깨달았다. 사람들은 다 그걸 알고 살았던 거다. 서로 오지게 평가하고 신경쓴다는 걸...
 
유튜브를 찍던 시절, 어떤 후배가 '선배는 정말 남 신경 안 쓰는 것 같아요, 브이로그에서 그런 헤어밴드를 다 쓰시고 ㅎ'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제서야 '그 헤어밴드를 쓰면 사람들이 좀 이상하게 보는구나'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남 신경을 참 못 썼다. 
 
내가 겪은 한국 사람들은 남 신경을 미친듯이 쓴다. 하지만 남을 헤아리려고 하진 않는다. 완전한 관심은 없고, 반쪽짜리 관심뿐이다. 반쪽짜리 관심은 신경증에 가깝고, 상대가 진정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고 하는 전인격적 대우는 어디에도 없다. 가십으로 쓸만한 것들, 즉 자신의 사회생활에 도구로 사용될만한 남의 소스들을 쫙쫙 뽑아내는 것이 우리내 '신경쓰기'의 특징이다. 나는 이게 한국사회 모든 문제의 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저출생? SNS 중독? 자살률? 다 관심 안 주고 더럽게 남 신경만 써서 그래 흑흑.
 
남이 뒷담화를 들으면 '에이 다른 사람들 너한테 그정도로 신경 안 써~', 자기가 뒷담화 들으면 '뭐? 걔 번호 좀 줘봐 나 그런 사람 아닌데' 슈돌을 보면 상대적 박탈감, 고딩엄빠를 보면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SNS 스토리 많이 올리면 관종, 자기가 친한 거 과시하고 싶은 사람들 태그, 좀만 상대적으로 허접해보이면 무시, 잘나보이면 앞에선 우와~, 뒤에선 저새끼 단점은 뭘까? 집중포격... 무조건 나만 기준이고, 다른 사람들 나보다 조금이라도 더 헤아려보려고 하면 도태되는 사회다. 이상한 새끼라고, 이상한데서 힘뺀다고.
 
문과의 미덕은 그런 애매한 개념에 적확한 이름을 붙여주고 기민하게 반응하는 것이거늘... 이 속세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도 피해야 될 일인데, 한 번 목도 해버리면 끝도 없이 우울해진다. 사람이 우주란 말이 이런 걸까 싶다. 천문학자들이 인간의 보잘 것 없음을 알고 자살을 많이 한다고들 하는데, 졸렬한 인간성의 위대함!도 못지 않다.
 
서론이 또 너무 길었고, 이번에 지나치게 등신같고 찌질한 사건을 봤기 때문에 대규모 광역 저격을 넣어보려고 한다.
 
민지의 칼국수가 뭐지? 사건

위키백과의 칼국수 사진. 어제 칼국수 생각하다 칼국수 먹음.

 
개요는 이렇다. 침투부에 출연한 뉴진스 민지가 먹는 이야기를 하다가 "칼국수가 뭐지?"라고 말하자, 이에 분개한 네티즌들이 민지의 지난 행적을 모두 까발리며 '지나치게 컨셉질을 한다.', '강원도에서 올라왔으면서 ㅋ 외국 유학파 컨셉, 신비주의 컨셉 잡네~ (강원도 지역 비하까지 낭낭하게 섞어치기...)'를 시전했고 이에 뉴진스 민지는 라이브 방송에서 '제가 칼국수를 모르겠어요?'라고 까랑까랑하게 맞대응을 시전했다. 이에 아이유 시절부터 내려오는 유구한 '여돌 기싸움'에 예민한 우리 민족 누리꾼들은 분기탱천하여 자진모리 장단을 치며 그를 까내리기 시작하는데...!
 
방학 때 여돌들 글을 너무 읽어서 이런 말같지도 않은 사태를 속속들이 알게 된 거 자체가 좀 부끄럽지만, 또 어리고 예쁜 여자애 하나 매도하는 꼬라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인터넷에 찌끄레기 글 남긴다.
 
내 판단은 이렇다
1. 의문사는 누구나 실수하기 쉬운 낱말이다. 예) 너 어제 만난 걔 머임? => 너 어제 만난 걔 누구임?이 맞음 / 바바리안 빌드 이거 머임? -> 바바리안 빌드 어떻게 해야 됨? / 엔빵 금액 머임? => 엔빵 금액 얼마임? 
다 의미가 통하는 건 '머임? = 뭐지?'가 의문사 대부분을 대체할 수 있게, 범용성있는 단어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애가 라이브 방송 나와서 말한 걸로 꼬투리 잡아서 뒤지게 조리돌림하시는 지성인 분들~ 일상생활에 머임? 쓰셨다간 아주 아방걸 되시겠어요. 걍 칼국수가 어땠지? 이 정도 말이 생각없이 칼국수가 머지? 정도로 나올 수 있는 거 아니냐. 입에서 나오는 말들 다 신경쓰고 말해? 오디오 채우는 용 말들 걍 난사되는 거 아니었냐며.
 
2. 컨셉질을 한 걸 수도 있다. 근데 아이돌 일이 그거 아님? 장원영 딸기 사태와 마찬가지로 보시기에 겸연쩍고 일상적이지 않은 모습이라면 돌팔매질들 하시는데 그런 님들은 아이돌이 면도 안돼있거나, 보통의 여자애들처럼 욕도 하고, 밥 먹다가 고추가루도 좀 끼고... 뭐 이런 조금은 너저분한 모습까지 참아주실 수 있는지? 아마 이거 가열차게 욕하시는 분들이 컨셉질하는 아이돌 욕하는 사람 집단과 동일한 집단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을 사람으로 보면  욕이 안 나올 거 같은데. 님들이 너무 이상적인, 그러나 솔직한 아이돌이라는 규격틀에 맞춰서 아니다 싶으면 너무 신경쓰시는듯. 
 
나는 이 사건이, 남을 지나치게 신경쓰는 문화가 극대화된 케이스라고 본다.
이 사람한테 관심을 기울이는 건 소수의 팬 한 줌이고, 대중상대로 하는 아이돌 비즈니스에 까판 벌어지면 오만 잡놈들 모여서 자와자와~
 
아이돌한테 신경쓰는 사람은 너무 많고, 한 사람으로 봐주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남한테 신경 안 쓴다고? 개가틍 소리... 뒤지게 신경쓰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슈가 이슈화된 거 아니겠나? 일상생활에서도 좀 눈에 난다 싶으면 상관도 없는 사람들까지 달려와서 손에 손잡고 기 꺾일 때까지 밟아죽이는 문화 어디 안 간다. 남이 못 나야 내가 잘 날 수 있다는 옹졸한 마음의 발화, 역시 한국이 좁아서 그런걸까? 파이가 너무 작아서? 우리 이제 잘 살자나ㅜ
 
다 같이 잘 되는 방법 따위는 애초에 소거해버리는 이 치졸한 인간들... 
특히 예쁘고 어리다! 라는 특성이 '상품화' 되는 건 대단히 논쟁적인 주제이나, 이건 좀 점잔빼고 윤리적 차원에서 다뤄야지... 끝까지 그런 건 아니라고 걔가 뭐가 예쁘냐 태도 문제다, 라고 자기 마음을 부정해버리는 님들의 속보이고 얕은 태도에 정말 한심함을 느낍니다. 
 
예쁘고 어린 건 케이팝 컬쳐에서 가장 돈이 되는 특성인 건 맞다. 뉴진스 민지가 그걸 가지고 있어서 이 유명세를 누리는 거? 맞다. 예쁘지 않다고? 님이 틀린 거다. 어리지 않다고? 이건 할 말이 없군. 
속으로는 이쁘게 태어나 유명세와 자본력을 가지는 게 아니 꼬와서, 이렇게 하나 꼬투리 잡히면 뒤지게 까고 이게 연예인들의 세금이라고 당연시하는 건 아닌지. 자기 검열을 좀 해야 덜 추해진다.
 
예쁘고 어린데 자기 할 일 찾아서 돈 열심히 잘 버니까 싫은 게, '칼국수가 뭐지?'로 터진 거라면. 안타깝지만 님은 순진하지만 예뻐서 남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영애 캐릭터를 소구하나, 그렇게 되지 못 하는 걸 알아버려서, 그걸 추구하고 실제로 행할 수 있는 여자를 못 견디는 게 아닌지. 
 
아방 순진 걸들이 정말 잘 팔리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추구하는 여자들한테 훼방을 놓아야 직성이 풀려? 그렇게 남들의 컨셉질에 신경이 쓰인단말야? 더럽게 할 짓 없네...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면 걔도 그걸 추구하는 데 이유가 있을 거 아니냐. 그거 좀만 보듬어주고 이뻐해주면 좋잖아. 영 짜증나면 친구 안 하면 되고, 연예인이 그래서 짜증나면 안 보면 그만이고. 신경을 못 끄겠으면 관심을 좀만 더 기울여 보세요. 걔도 분명 이유가 있겠지. 나도 님들이 본인 결함 해소 못 해서 민지한테 욕했겠거니 싶으니까 님들이 가엾다. 서로를 좀 가엾게 봐줘. 
 
대규모 집단 신경증을 고쳐야 대한민국이 산다.
 
다들 이렇게 남 신경 쓸거면 에바에 타라. 하나가 돼자. merge.

혐규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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