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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읽기

설리가 너무 보고 싶다

나는 연예인을 깊게 좋아해본 적이 없다. 

애초에 화면 속 타인을 사랑한다는 감정이 잘 이해되지 않아서, 덕질을 세게 하는 애들이 신기하기도 했다. 

 

에프엑스 때 설리를 좋아한 건 아니다.

그는 그냥 나에게 지나쳐가는 한 연예인에 불과했고, 

그래서... 그냥 지나쳐가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를 깊게 흠모하게 된 건 그의 투쟁을 목격한 후였다. 

나는 대학을 들어오고 처음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는데, 아마 첫 번째 팔로우가 설리였을 것이다. 

 

그녀의 온갖 가십거리를  씹어대는 언론통이나 익명의 찌질이들에게 환멸이 나서 어느 틈에 내 반골기질이 그녀를 응원하고 있더라고

처음엔 댓글을 다는 정성스러운 짓은 못했지만, 소심하게 빨간하트를 누르며 그녀의 행보를 응원하곤 했다.

 

한참 설리가 욕 먹을 때는 설리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찬찬히 살펴보면 설리는 참 아슬한 줄타기를 이어오고 있었다. 그래 온갖 모욕이 오고가는 저 더러운 악담 한 뭉텅이에서 제정신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가끔하는 라방에서 울먹일 때나 게시글에 언뜻 자기비하적인 글을 올릴 때 주제넘게 어떤 이상한 동질감마저 느꼈다. 나는 주제넘었다. 나 따위가 어떻게 그녀의 투쟁 전부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다가 설리가 조부모님들을 가리켜 자신이 다 아플테니 당신들은 아프지말라, 하는 글에서 굉장히 그녀가 일반적인 일상의 궤도와는 어긋나있음을 느꼈다. 사람들의 표적이 된다는 건 저런 거구나. 또 다른 시위를 당겨보라는 식으로 처연하게 구는구나. 그리고 아파하는구나. 

그래서 난생처음으로 아프지말라고 댓글을 달았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이제 내가 응원할 사람은 나와 같은 시간대에 없다. 그게 너무 분하고 슬퍼서 가끔은 정말 눈물이 나온다. 

 

나는 정말 힘들 때마다 설리를 생각했다. 

설리는 설리대로 살려고 참 많이 노력했다. 

내가 어영부영 남들 시선에 잘 들려고 기를 쓸 때, 설리는 그 온갖 나쁜 언어 틈바위에서 꿋꿋이 설리대로 살았다. 

그게 정말 멋있어 보여서 그렇게 되고 싶었다. 

 

나는 여전히 나대로 사는 게 버겁고 힘들다.

정말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설리를 생각한다. 

언젠가 그녀의 손을 꼭 부여잡고 싶었을 때를 생각한다. 

그리고는 내 손을 꼭 잡는다. 이번에는 놓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