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체제와 변동 중간대체과제
- 『소명으로서의 정치』 비판적 에세이

주제: 한국의 소수자 의제에 『소명으로서의 정치』가 갖는 의의
서론
대의민주주의 틀 안에서, 집권 세력인 엘리트가 난잡한 갈등상황에서 보편적 이해를 모은다는 것은 기만적으로 비쳐 보일 수 있다. 결정권자의 바운더리가 정해진 상태에서 정치인 개개인의 이해관계가 섞이지 않는 의견 수합과정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미헬스는 엘리트가 주도하는 이런 대의 민주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쳤다. 그러나 베버는 엘리트와 대중이 다루는 정치 영역이 구분되는 것에 큰 이의를 보이지 않았다. 베버는 권력이 대중의 힘에 의해 교체되기 때문에 대중과 정치 지도자의 분리된 관계가 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즉 그는 선거라는 과정이 포함된 대의 민주주의가. 당대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정치체제라고 생각했다. 이런 베버사상의 배경에는 당대 독일이 자영농에 기반을 둔 균질적인 사회였다는 사실이 있다.
때문에 베버의 논의는 다원화된 현대사회에 적용하는 데 분명 한계가 존재한다. 민중들 간의 격차가 커지고, 합의점이 소실되는 현대사회에선 지도세력이 주도적으로 여론수렴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의 대중담론은 역설적인 두 개의 현상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현실과 괴리되는 대의민주주의 양상에 환멸감을 느끼고 정치 효능감이 떨어진다고 생각해 정치에 등을 돌리는 정치 무관심으로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SNS, 커뮤니티 등 사적 디지털 공간을 이용한 무질서적 과격파의 형성이다. 이 두 경향은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 시기때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났다. 2000년대 초중반, 17대 대선에선 역대 최저인 63% 투표율이 나왔고, 디시인사이드를 위시한 극단적 인터넷 커뮤니티와 사적인 정치명사들의 SNS가 태동했다. 이러한 무관심과 과격화는 베버가 이미 서술한 바 있다. 베버는 ‘대중투표제적 지도자가 당을 책임질 경우 그의 추종자들은 영혼의 박탈 때문에 괴로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민이 ‘영혼의 박탈’을 느끼고 주류 정치과정에서 탈선하는 현상은 베버에게 지극히 예상 가능한 일이였다.
하지만 2010년대에 들어 디지털 정치 담론장이 성장하며 대중들의 정치 참여는 전보다 조직화된 형태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사례로, 다양한 인터넷 커뮤니티, SNS를 통해 갑질논란, 여성혐오, 아동학대 등 소수자에 대한 차별 문제가 공론화되는 상황을 들 수 있다. 개인이 발휘할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이 급격하게 증대된 현대사회는 베버의 상상력에서 벗어난 것이다. 따라서 베버의 서술은 현대 정치 메커니즘에서 일정부분 수정을 요한다. 『소명으로서의 정치』는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서술은 분명 지도자 위주의 서술이다. 따라서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이용해 현대적 상황을 분석한다는 의미는, 베버가 언급하지 않은 혹은 논점에서 제외한 참여민주주의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아이디어를 빌려오되, 현대에서 적용하기엔 부족한 베버의 서술을 실질적인 현실에 근거해 채우는 것에 가깝다. 이 글은 소수자의제의 등장으로 다원화된 현실을 고려해, 베버의 대의민주주의가 현대에 갖는 적실성과 우리 사회가 베버로부터 배워야할 점을 다루고자 한다.
본론
(1) 베버의 대의민주주의는 현재의 상황에서 얼마나 적실성을 갖는가. - 한국 정치상황분석
밑으로부터의 정치에서 지도자의 집행으로 초점을 옮긴 베버의 접근은 당대 상황 속에선 현실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현재 이런 상황은 역전돼있다. 2007년 대선 이후 파생된 디지털 공간 내 조직은 아마추어적이지만 의제 설정 기능에 조금씩 침투해있다. 밑으로부터의 민주주의는 더 이상 자유주의의 이상에 머물러있지 않고, 아마추어적인 조직화도 더 이상 ‘사라져 버리는 거품’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촛불시위라는 대중 참여가 조직적으로 움직여 국가원수를 탄핵한 사건을 목격했다. 최근에는 조국사태로 불거진 정당간의 갈등국면에서 정당보다 ‘대중 시위’가 정치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상황도 펼쳐졌다. 이처럼 한국에선 유권자의 이해관계를 수합하는 과정이 소멸하고, 정치지도자는 날 것 그대로의 ‘국민의 뜻’만 남겨둔 채 책임회피에 급급하고 있다
대의민주주의의 원래적 의미가 사라지는 한국의 정치 현실은 유권자의 의사가 정치적 제도로 편입되는데 걸리는 시간이 인내할 수 있는 한계 시간을 넘어서는 데서 촉발된다. 모든 의제에는 우선순위가 존재하고, 특히나 소수자 의제 같은 경우에는 기존 정당들의 서열화 작업에서 패배하는 경우가 잦다. 베버가 주창한 지도자 민주주의가 이런 문제점에 적절하게 부합하는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해당 문제에 대해 일반적인 해결책으로는 인민이 집권 정당의 중재적 역할을 거부하고, 스스로 의제를 설정하는 참여민주주의로 방법이 가장 빈번하게 다뤄진다. 그러나 베버는 대의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 자신의 이상과 어긋나는 구체적인 문제점을 설파하며 논의의 여지를 열어둔다.
베버가 제기한 문제들은 현재 한국의 상황과 맞닿아있다. 현대 한국의 권력분립체제를 위협하는 가장 큰 문제는 행정부 비대화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제왕적 권위를 가져 국가권력 정반을 장악하고 있다는 주장이 끊임없기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정치적 동원의 가장 강력한 근거가 ‘청와대 국민청원’이 되는 현상은 이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의회는 대표기능을 상실하고 있고 이에 따른 정치적 공백을 관료화된 국가가 차지하며 힘의 불균형이 일어나고 있다. 투쟁을 할 수 없는 관료가 지도적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은 정치적 책임을 지는 주체의 부재를 의미한다.
베버는 바로 이런 이유로 관료와 정치 지도자의 역할을 분명히 나눈다. 앞서 언급된 한계 시간은 한국의 소수자에게 생존의 위협으로 다가온다. 때문에 소수자에겐 정치 지도자가 의제를 수렴하고 절차대로 제도화하는 방법보다 관료의 행정적 절차가 직접적이고 효율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관료화는 관료가 상급자의 명령을 맹목적으로 따라야한다는 기초에 의해 주류 정치 질서에서 배제된 이들의 신념이 온전하게 반영될 수 없는 구조를 지니게 된다. 다시 말해, 소수자의제는 단기적으로 관료적 국가가 얕은 범위에선 처리 할 수 있지만, 본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선 다시 베버의 의회주의를, 또 대중 투표제적 지도자 민주주의를 필요로 한다.
단편적으로 베버를 비판하고자 하면, 소수자 의제가 소실되는 현상을 베버적(的) 대의 민주주의의 ‘불가피한’ 폐단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권력 독점으로의 경도는 이미 베버가 명시적으로 경계한 문제이다. 또한 베버는 독일을 비롯한 다양한 국가들의 사례를 제시해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불거질 수 있는 대의민주주의의 문제에 대해 이미 지적한 바 있다. 따라서 베버적 대의민주주의 본질에 문제를 따지기보다, 그 적실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과연 참여민주주의로의 열망이 터져 나오는 현대사회에서 베버의 주장은 어느 정도의 효용을 발휘하고 있는가. SNS가 참여민주주의 정착에 긍정적인 요소가 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참여민주주의로의 흐름 역시 필연적이다. 대중은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수단을 갖추고자 하며 이러한 욕망의 표현은 불가역적이다. 그러나 여전히 현실적인 문제, 시간과 공간의 제약, 대중 영합주의 등으로 참여민주주의는 한계가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는 대의민주주의를 옹호한 베버의 주장을 현실에 맞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2) 『소명으로서의 정치』 안의 공백, 무엇을 지향할 것인가.
베버가 이야기하는 정치체제란 여전히 당대의 시대적 한계로 인해 소수자 의제와 정합하지 않다. 베버는 ‘늙은 아낙들’을 비하하는 서술을 한 바 있다. 이 한 문장에는, 여성혐오, 노인혐오의 정서가 배어있다. 여기서 드러나듯이, 소수자에 대한 현대적 감각으로 베버를 이야기하기엔 굉장한 어려움이 존재한다. 물론 이런 소수자의 문제가 베버의 주요 논점은 아니다. 『소명으로서의 정치』의 서술 전반에서 베버는 하나의 ‘대의’로 정치가 해결해야 할 과제를 이야기해, 정치가가 대의를 이루는 과정에 집중했다. 이는 지향에 대한 서술을 학자로서 정치인에게, 정치적 행위로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적 목적으로 언급한 데 그쳐 실질적 공백으로 남겨둔 셈이다. 베버 자신도 강의의 서문에서 정책에 담긴 내용을 다루지 않는다고 선언한 바 있다.
따라서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는 현대인의 입장에서 지향에 대한 서술을 풀어갈 여백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러한 소수자 의제를 다루는 데 있어 베버가 제시한 방법론을 채택하되, ‘무엇’을 추구하는 지에 있어선 적어도 베버 시기 이상의 진보를 보여줄 수 있다. 역사를 소수자가, 정상으로 규정된 사회에 반문하며 이루어진 투쟁의 과정으로 해석한다는 관점으로 본다면 ‘무엇’에 대한 이상적 지향은 ‘평등’이라는 지고의 가치로 풀이될 수 있다. 21세기 한국은 사회적 소수자의 전면적인 정치 조직화를 목도하고 있다. 여성, 난민과 이주민, 성소수자, 장애인 등은 의회 입성을 시도하며 기존 기득권 세력에 실질적인 대항을 시도한다. 그러나 소수자 의제는 역차별을 불러일으킨다는 잡음 속에서 계류 중이다.
공리주의적 관점에서도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향상하기 위해 소수자는 보다 많은 권리를 누려야 하며, 의무론적인 입장에서도 모든 인간의 가치를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소수자 권리는 보장돼야 한다. 또한 현대인은 이런 윤리 사상에 머무르지 않고 역사적 경험을 통해 소수자에 대한 인권감수성을 보편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추상적 인식이 현실세계에서 실현될 때, 본인의 파이가 약탈된다는 감각은 인민으로 하여금 소수자를 위협으로 인지하게 만든다. 그러나 소수자 역시, 아마추어적인 정치 조직화, 담론 장에의 진출을 학습하며 본인의 권리를 주창하기 위해 수면으로 나오고 있다. 이런 갈등 국면에서 한국의 정치지도자는 무책임한 평화 주의적 정치 수사로 소수자를 기만하는데 머무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따라서 그는 한국 정치 현실의 구체적 상황에서 소수자의제의 정당함을 증명해야하는 과제를 부여받는다. 여기서 지도자는 베버가 이야기한 신념윤리와 책임윤리의 이율배반적 구조, 그리고 이를 균형적으로 결합하는 것의 중요성을 배울 필요가 있다.
(3) 베버의 관점에서 소수자의제의 조직화문제를 짚다
베버는 신념윤리에 치우친 데마고그들이 저마다의 이상을 실현한다는 가정을 비판했다. 신념이 절대화돼 모든 행위에 일관된 의미를 부여하는 일원론적인 가치체계는 데마고그가 가진 의도와 행위 간의 일치를 따진다. 그러나 이처럼 가치합리성만을 따지게 되면, 공동체에게 선(善)한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에 대한 정당화는 생략된다. 다시 말해 맹목적인 신념과 정치의 폭력적인 수단 이용 사이에 긴장관계를 만든다. 소수자 의제를 다룰 때 명심해야 할 점이 바로 이 모순이다. 소수자의제는 주류 정치세력에 진입하지 못한 소수자들 자체의 조직화가 아마추어 수준에 머물러있다는 문제점을 차치하더라도, 스스로의 신념윤리에 얽매여 자멸할 위협을 안고 있다.
소수자로서 정치계에 살아남는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의의를 증명하는 데 있어 다수에게 합리적이라고 여겨지는 근거, 경제 혹은 치안 등을 끌고 오는 거대 정당들과는 다른 궤도를 보여줘야 한다는 뜻이다. 그들은 타자에게 본인의 정체성의 필요를 납득시켜야 하는데, 타성을 전제하는 다수와 소수의 관계에서 감정적인 수사(修辭)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이에 피해자성을 강조하며 동정을 자아내는 전략이 사용되곤 한다. 이 경우 소수자는 끝까지 피해자라는 전략적 기반을 유지해야 하며 때문에 유권자에게 소수자의 낮은 지위는 고착돼야만 한다.
정치란 권력에 관여하고자하는 분투노력인데, 이 권력을 쥐는 순간 소수자는 유권자에게 물리적인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소수자는 정치에 성공적으로 입문함에 따라 소수자의 정체성을 설득시킨 전략을 포기해야하고 이는 유권자에게 배신으로 혹은 위협으로 읽힌다. 소수자의 정치행위가 공동체 전체를 위한 평등에의 분투라 할지라도, 또 그것이 일시적일지라도 위계관계가 전복되는 순간 소수자의 정치적 기반은 공격받는다. 이처럼 가치합리성에 경도된 소수자 집단은 결과로서의 합리성을 상실하기 쉽다는 점에서 외부로의 설득력을 잃게 된다.
또한 소수자 내부적으로도 정치 조직을 유지하는 데 있어 비윤리적인 방법을 사용해야한다는 점에서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 베버의 입장에서 기존의 질서를 전복하고자 하는 혁명에의 도전과 평등에 대한 신념에서 시작된 소수자의제는 전통적 일상이 찾아올 때 급격히 식을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따라서 이런 조직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소수자의제를 이끄는 지도자는 추종자를 정신적 프롤레타리아로 개조하거나, 평등이라는 신념보다 생계유지라는 상대적으로 저열한 동기를 자극해야 한다. 두 방법 모두 평등이라는 신념에 기초한 조직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전략이다. 때문에 지도자는 조직 구성원에게 이 전략의 필요성을 설득해야 한다는 과제를 부담한다.
이처럼 소수자의제를 다루는 정치 지도자의 선의는 폭력을 본질로 삼는 정치에 부합하지 않는 성질을 가진다. 선한 신념을 가진 그는, 마키아벨리의 주장을 빌리자면, 정치를 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잔인하고 부도덕한 방법을 차용해야 한다. 더 나아가, 소수자의제의 정치 지도자는 타 정당의 지도자보다 상대적으로 고려할 사항이 많다. 그는 외부세력의 강도 높은 견제와 의도와 행위간의 괴리로 생긴 조직 구성원의 반발을 견뎌내야 한다. 그는 이 모든 장애를 버텨내야 비로소 정치인으로서 책임윤리를 다할 수 있다. 신념윤리에 경도될 수 있는 소수자 의제의 지도자에게 베버의 사상은 경종을 울린다. 당위성에 매몰돼 결과를 상상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도구적 태도를 고려하지 않는 무책임한 지도자다. 베버는 ‘정치가 책임의 도덕에 기초해야 한다’는 말을 통해 소수자의제의 지도자가 흔히 빠질 수 있는 교조적 이데올로기를 경계한다. 이처럼 소수자의제가 정치적 구심점을 옹립하기 위한다면, 구심점이 될 지도자는 베버가 이야기하듯 신념윤리와 책임윤리의 균형을 지킬 수 있는 자가 돼야한다.
결론
소수자의제, 베버적 사상과 현대의 수단을 포괄해야 한다.
베버는 ‘신념윤리와 책임윤리가 서로 절대적 대립관계가 아니다’며 정치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신념윤리를 지탱하는 내적인 힘’과 루터의 예를 빌려 ‘진심으로 결과에 대한 책임성을 느낀 행동’을 이야기했다. 정치 지도자는 신념에 집착해선 안 된다. 대중을 향한 말과 글로 이루어지는 정치에서 그는, 표현을 사용할 때 ‘불모의 흥분 상태’를 빠지는 유혹을 느낀다. 이 같은 왜곡된 열망은 일시적으로 대중을 매료할 수 있는 힘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결핍한다는 의미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올바른 정치 지도자는 대중에게 본인의 신념을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설득해야한다. 소수자의제는 ‘정상’ 규범에 속한 다수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전략이 부족하다. 때문에 소수자의제가 가진 당위성에 의해 전략적 우위를 선점하고자 하고, 이를 설득하는데 있어 단기적인 방법으로 신념에 경도된 열정적 헌신을 전면에 내세우기 쉽다. 그러나 이는 소수자의제가 추구하는 정치적 결과, 온전한 평등을 얻을 수 없는 아마추어적 정치 행위에 불과하다.
대의민주주의가 기반이 되는 한국의 정치상황에서 소수자의제는 정치적 책임을 질 수 있는 정치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 그는 관료적인 국가체제에 대항하는 의회정치 내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반문해야 한다. 관료가 아닌 정치인으로서 그는 소수자의제라는 ‘좋은’ 사안을 추동하는 데 어떤 수단을 이용해야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분명 디지털 사회로의 진입은 당사자성을 띤 소수자들의 직접 참여가 가능한 환경을 조성했다. 동원할 수 있는 추종자가 늘어나는 현상은 지도자에게 양날의 검이다. 먼저 이는 정책에 담긴 소수자의제에 정당성을 강화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신념에 매몰된 당사자들을 폭력의 본질을 내포한 정치권력으로 통제하는 어려움이 동시에 존재한다.
참여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대중은 베버의 지도자론을 구시대의 유물정도로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다양한 의제가 난립하는 현재 상황에서 정치세력을 조직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베버의 사상은 합리적인 판단에 길잡이가 된다. 베버야 말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이율배반적 구조 속에서 반대적 개념이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그 가운데 균형을 잡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한 사상가이기 때문이다. 소수자의제에서 참여민주주의로의 전개는 신념윤리와 책임윤리 사이에서 어느 쪽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타개할 수 없는 문제를 내포한다. 동원세력의 증대는 강화된 정당성으로 인해 신념윤리로 빠질 위험과 신념에 매몰되기 쉬운 당사자들을 조직적으로 통제하고 실질적인 결과를 내야하는 책임윤리의 압박을 가져온다. 베버는 바로 이런 갈등하는 명제 속에서 변증법적 결론을 내고자 했다.
따라서 소수자의제를 다루는 정치 지도자가 정치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베버의 사상은 큰 의미를 가진다. 단순히 대중에게 영합해 선거에서 승리한다는 단기적인 목표에서 벗어나, 현상을 이해하고 균형점을 잡는 태도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노력은 정치 지도자에게 필수적인 과정이다. 소수자의제를 다루는 정당은 기존정당에 갖는 경쟁력이 당위성이라는 지점에서 또 사회적으로 규범화되지 않은 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보다 유동적인 정치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베버의 사상은 바로 이런 동태적인 문제에 대해 사고력을 기르는 촉매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참고문헌>
막스베버, 최장집(엮음), 『소명으로서의 정치』, 후마니타스, 2011
이승원, 「현대 정치의 주체, 공간, 그리고 민주주의」
최지향, SNS이용과 정치참여: 정치적 사회자본과 정보 및 오락추구 동기의 조절된 매개효과를 중심으로, 한국언론학보 60(5), 2016.10., 123-144쪽
임의영, 「Wever의 관료제에 대한 전망의 행정철학적 재구성」, 한국행정학보 29(2), 2005.06,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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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한 것보단 성적이 덜 나온... 비운의 에세이.
티스토리에 올려놓고 결함을 찾고자 합니다. 피드백도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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