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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읽기

제가 변호를 멈추면 당신이 다음을 이어주세요

 

 

1

 

아무리 생각해봐도, 인간은 효용이 좋은 존재가 아니다. 폭풍이 , 강둑에 수십년만에 돌아온 모래톱을 보며지구에 적을 모든 것이 각기의 가치를 두고 사는구나‘, 생각하면서 인간의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우주에 어떤 무게를 얹으며 살고 있는가? 우주보다도 작은 지구에서, 조금의 힘만 주면 흩어질 유기물을 떠안고

, 어쩌면 이렇게 하잘 없는 생을 살고 있나. 존재에 대한 물음은 답하기 너무 어려운 질문이라서, 그렇게 많은 철학자들이 슬픔을 안고 죽은 건지도 모른다. 굳이 철학자가 아니더라도, 모든 인간은 몫의 ‘존재 이유에 대한 증명’을 사명으로 가진다. ‘나는 존재해도 되는가?’ 생각보다 존재의 죄는 크다.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다. 그냥 인간은 태어난 이래로 많은 것을 착취하는 죄를 짓는다. 때문에 인간은 열심히 자기 변호를 해야 한다.

 

우리는 사는동안 끊임없이 자기 변호를 요구받는다. ‘그래서 네가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네가 나랑 사겨야 하는데?’, ‘그래서 네가 돈을 받아야 하는데?’.. 이하 줄임. 죽으면 자기 변호의 기회는 없다. 그래서 그를 사랑하는 다른 이들이 나서 망자 몫의 변호를 대신 해준다. 이건 딱히 사람으로서 존재의미를 적확하게 설명하진 않는다. 그는 사람이 아니라 상징으로서 변호받는다. 자살이 유독 변호받는 이유다. 그가 스스로 변호를 포기해, 남겨진 망자 몫의 변호가 너무 많다. 상징처리된 그의 존재이유에 모두가 해석을 얹을 있다. 가타부타 정답을 내놓는 출제자가 사라졌으니까. 자기 멋대로 주석을 단다.

 

변호는 변명과는 다르다. 변명은 구차한 핑계로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을 주절주절 늘어놓는 것이고, 무엇보다 듣는 이로 하여금 짜증을 불러일으킨다. 타인의 변명을 귀담아들어줄 군자는 드물다. 변호는 변명보다 뚜렷하게 설득을 과녁으로 삼는다. 화살이 과녁을 정확히 꿰뚫기 위해 많은 조건, 명궁이나 적절한 공기흐름이나 훌륭한 장비 등등이 필요하듯이 변호 역시 다양한 요건을 갖췄을 설득에 성공할 있다. 그냥 논리만 갖다붙인다고 빡빡한 현대사회가 당신을 받아들여주는 아니다. 이따금씩은 먹먹한 문장으로 타인을 감화시킬 수도 있어야겠지. 여전히 사연팔이가 먹히는 이유다. 대체로 격을 지키되, 솔직함이라는 틈도 열어둬야 한다. 그러면서도 완전 밑바닥은 보여주면 된다. 정상 규격에서 벗어나는 순간 이해의 폭은 좁아진다.  

 

 

 어떤 사람은 태어남으로써 존재의 이유를 부과받기도 한다. 집안이 좋거나, 외모가 출중한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그가 속한 공동체는 그가 설명하지 않은 존재로 그를 받아들인다. 근데 이건 혈통좋고 예쁜 강아지도 존재를 증명받는 방식이니까, 사람의 존재 이유라고 수는 없다. 몫의 변호를 치러내지 못하는, 집안 좋고 잘생긴 사람들에게 같잖은 위로를 보낸다. 사람은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있을 , 진정 자신을 변호할 있다. 사리분별도 못하는 핏덩이인 나를 변호할 없기에, 그때 존재의 죄는 책임조각사유가 성립한다고 주장하겠다. 당장에 기억이 닿는 아주 옛날은 토마토를 거부하던 유치원 때다.

 

2

 

 나는 토마토가 싫다. 껍질을 뚫으면 터지는 신맛이 견디게 토맛같다. 처음에 아주 토마토를 먹고 토했던 트라우마가 스물 넷이 넘은 지금도 남아있다. 그래도 유치원 선생님은 기어이 작은 입에 토마토를 밀어넣었고, 나는 이후로 토마토가 점심에 나오면 입에 살포시 물고 화장실에 달려가 뱉곤 했다. 유년기는 거의 그런 식이었다. 쉬운 방법만 찾는 인이 박여, 때로는 고집을 부렸고, 그래서 그냥 하면 쉬울 일을 꼬기도 했다. 같이 청소 당번인 남자 애가 청소는 여자 애나 하는 거라고 말해, 쉽게 대걸레를 집어 던져, 아이에게 턱이 돌아갈 정도로 맞은 적도 있다. 그래서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비오는 날이면 턱이 아팠다. 정의로워서가 아니다. 그냥 나혼자 청소하기 귀찮았다. 선생님한테 혼나기 싫어서 토마토를 버리는 숨긴 것처럼, 아주 큰일이 같을 입을 닫고 비굴하게 굴었다. 맞는 무섭지 않아도 좋은 애라고 인정받지 못하는 무서웠다. 너무 무서워서 가끔은 정말 크게 울었다.

 

애초에 인정욕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열심히 살지도 않았을 거다. 어릴 때부터 얼마나 욕심이 많았던지, 학원을 다니던 시절에 영어 에세이 주제가 욕망은 좋은 것인가?’였는데 많은 학생 중에 나만 yes라고 했다. 아직도 에세이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때 내가 sheet shit으로 써서 호되게 망신을 당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불을 보면 생각이 난다. 그때 이후로 나는 학원에서 영어 실력으로 인정받는 포기했고, 신나게 애들과 놀았다. 나는 sheet shit으로 쓰는, 재밌던 애라서 친구들이 인정해줬다. 시절에 배운 자조적인 개그를 여전히 써먹고 있다. 그게 통하게 쯤에 공부를 시작했다. 90점을 넘으면 쳐다보지도 않는 엄마덕분에, 시험을 빼곤 90점을 항상 넘겼다. 초등학교 수학 경시대회에서 처음 84점을 맞고 애들이 보는 앞에서 환상의 눈물콧물쇼를 했다. 어찌나 흉했나, 나를 재수없어 하던 친구가 나를 위로했다. 엄마가 무서웠다. 공포를 댓가로 이렇게 좋은 학벌을 가진 걸지도 모른다. 감사해요 엄마!

 

젠장~ 생각이 안 났다고~

 

이젠 그렇게 필사적으로 열심히 살지 않는다. 연료가 되는 인정욕이 희박하다. 늙은 걸까? 예전엔 심한 굴곡이 많았다. 으레 그러는 것처럼 사춘기를 겪고, 또래집단이 전부인 것만 같아서 집착하고, 기대가 좌절되고, 절망하고 번은 그냥 죽고 싶었다. 그래도 내가 맞았다는 증명하고 싶어서, 내가 틀렸다고 사람들을 혼쭐내고 싶다는 인정욕 때문에 간신히 버텼다. 이제는 다사다난한 유년기의 궤적이 희미해지고, 나를 버티게 만들었던 인정욕이 떠나갔다. 내가 놓은 것도 아닌데. 인정욕도 피터팬처럼 나이가 아이를 떠나나보다. 나는 아직 어른은 아닌데, 눈빛을 형형히 밝힐 연료도 남아있지 않다. 인정욕이 떠나며 공포를 데리고 가지도 않았다. 나는 여전히 쓸모가 없을까 두렵다. 그냥 의미없는 세계에 나라는 사변을 덧붙이면서 살아가고 있다. 거미처럼, 아무 의미없는 존재의 실을 뽑아내면서 위대한 마더 네이쳐에 피해만 끼치는 아닌지... 프랜시스 베이컨이 본다면 살아선 된다‘고 할지도 모른다. 잔인한 영국인.

 

쎄한 눈빛...

 

냉정한 영국인의 철퇴를 피하기 위해 지질한 고백록을 덧붙이자면, 나는 나를 이해해줄 하나를 기다리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갑자기 걸그룹 유행가사가 같지만, 솔직하게 유치해지자면 그렇다. 이해를 옛적에 포기해서 인정받는 걸로 위안 삼았는데, 인정욕 마저 떠나 보내니 내가 진짜로 원했던 뭔지 선명해진다. 나는 정말 나를 만나서,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토닥이고 싶다. 나를 이해하는 그와 한번의 대화라도 나누고 싶다. 견고한 세계에 온몸으로 부딪혀 공명할 다른 세계가 있기를 기도한다.

 

3

 

그동안은 그를 찾을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코로나나 미세먼지나 혐오사회를 마주한 지금은 지구에서의 생활이 얼마 남지 않은 같아서 걱정된다. 이러다 인류가 멸종해버리면 어떡하나. 걱정이 생기니 소심해진다. 내가 찾는 이의 상이 흐릿할 즈음엔 걸핏하면 죽어버려야지, 했다. 불특정 다수에 대한 인정욕은 ‘그걸 얻었나’에 대한 /아니오 선지만 남겨서, 그렇게 극단적으로만 사고했다. 근데 하나를 찾으려니 문제가 주관식이 돼버렸다. 있는 오래 살아서, 그의 이름을 적고 싶다.  

 

2 전에 외계행성과 생명‘이라는 수업을 들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있는 우주에서 유기체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왠지 낙담했다. 지구에서 그를 찾기를 내심 포기해서일까. 우주에라도 있었으면 했는데. 진도가 한참 나갔지만 나는 녹음기를 켜놓고, 유기체에 대해 생각했다. 그래, 우리도 부친추정의 원리라는게 있어서 굳이 DNA 검사를 하고 친부의 성을 붙이는 아니지 않나? 나는 지금까지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았고, 아빠가 엄마의 부정을 의심해 친자확인을 해본 것도 아니니까, 내가 DNA 있는 없는 지는 모르는 거다. 그러니까, 내가 유기체일 이유는 없는 거지. 코끼리 땃쥐도 쥐처럼 보이지만 코끼리 친척이라잖아.

 

저는 코끼리 사촌입니다요 찍

 

무기체일지도 모른다. 아직 인류가 파헤치지 못한 새로운 방법으로 살아있는 수도 있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그와 만날 확률을 높이기 위해 여기에 걸어 보겠다. 무기체라서, 그래서 아직 흔적을 들키지 않은 외계인과 닮았을 수도 있다. 그를 만나기 전까진, 나는 죽을 수가 없다. 자의식을 붙든 체로, 내가 나일 그에게 위로의 말을 들어야한다. 나와 똑같이 외로웠을 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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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도 너무 바쁘게만 흘러갈 것 같아, 욕심을 내 인문학글쓰기라는 수업을 신청했다.

과제로 글을 쓸 수밖에 없어서 게으른 글쓴이한텐 딱인 수업!

그러나... 예상한대로 좀 벅차다. 시간이 너무 없다. 나랑 같이 일하시는 분들은 애초에 이 글보면 좀 빡칠듯. 이새끼 시간많나? 하고

님들아 혹시 그런 생각 하덜덜말아주세요.

새벽에 쪼개서 쓴 글입니다. 그래서 요즘 늘 수면부족인듯

건강한 몸에 건강한 마음이 깃든다고, 앞으로는 체력관리를 하면서 글을 써야겠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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