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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읽기

선택을 30번만 해도 2의30승

어렸을 때는 세상 모든 게 내 것이 될 것만 같았다. 물질적인 의미보다, 선택의 영역에서 나는 늘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공부를 잘 하면서 인간관계도 원만하고, 사람들을 잘 사귀면서 그들의 악한 모습까지 끌어안고. 나는 교과서를 열심히 보는 학생이었고, 교과서에는 늘 그런 완전한 대화들만 등장하니까. 그게 진짜인 줄 알았던 거다.

 

반쪽짜리 세계는 우스워보였다. 뉴스에서 등장하는 이상하고 잡다한 사건 사고들이 내게는 늘 다른 선택지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옹졸한 마음 같았다. 조금만 양보하면 안 되나, 조금만 나눠주면 안 되나.

 

하지만 이제는 안다. 하나를 취하면 반드시 하나는 버려야 한다는 걸. 적어도 사람들을 그 장면을 원하고, 내가 하나를 취할 때 꼭 하나를 버리는지 지켜본다. 둘 다 욕심내서는 안 된다.

나도 그랬으니까, 너도 모두를 취할 수는 없는 거야. 라고 주변에서 뇌까린다.

 

내가 어렸을 때 그렇게 코웃음 쳤던 작은 선택지들이 이제는 그보다 더 좁아진 내 시야에서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내가 그렇게 거부했던 다른 이의 목소리로, 아주 쩌렁쩌렁하게 명령한다.

 

다른 이의 목소리를 내면화하는 일은 사회인의 생존방식이다. 이렇다면 일부는 줏대없이 산다고 욕하겠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또 반쪽 일부는 반골이라고 왜 내 방식을 따르지 않느냐 욕한다. 이 시작마저도 선택이고, 내면화 이후의 세계에서는 보다 벼려진 질문들이 시시각각 기다리고 있다.

 

저번에도 글을 썼지만, 다른 걸 다 포기하고서라도 얻을 수 있는 딱 하나, 딱 한사람이 온다면 나는 그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테다. 돈? 명예? 외모? 다 필요 없어질 것만 같다. 하지만 정작 나는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고, 나는 내면화 이후의 세계에서 또 선택하고 가려내고 가려진다. 왜냐면, 내가 딱 한사람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왜냐면 나도 결국엔 내 과거의 선택들대로 온전해지지 못해서. 아닌 척 했지만 항상 미련이 남아서, 옛날에는 선택하는 것 자체도 우스웠는데, 나는 지금 그 우스운 선택들 중에서도 내가 한 찰나의 선택들에 전전긍긍한다. 우스운 애들 중에 내가 제일 우습다.

 

내 쪼대로 뻗대는 게 자랑스러울 때도 있었다. 이제는 아니다. 나는 내 쪼대로 살면서 이 세상에 저항하려고 했나본데, 그냥 그대로 물 흐르듯 살아가는 사람들도 얼마나 자기 생을 지탱하는 게 힘들었을지, 세상살이 급류를 있는 대로 받아내는 게 지독히 힘든 일이라는 걸 이제 알았다. 참 미안하기도 하고, 나는 앞으로도 그렇게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단 하나를 선택해서, 그 하나를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하나 외의 나머지 것들을 무서우리만치 외면하는 것. 딱 하나를 지키기 위해 세상만사를 적으로 돌리고, 적은 아니라도 부차적 문제로 치부해버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도 그 하나가 외면할 때 속절없이 무너지고... 다시 그 하나를 미워하고 욕하게 되는 내가, 선택을 의무처럼 지던 지나간 인물들보다 훨씬 우스운 사람이다.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노랗게 물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네.

안타깝게도 두 길을 다

 

가보지 못하는 서운함에

한 길이 수풀 뒤로 구부러져

 

보이지 않는 곳까지

멀리멀리 굽어보며

한참을 서 있었네.

 

그리고 한 길을 택했네.

똑같이 아름다웠지만 풀이 우거지고

 

인적이 없어

더 나아 보이는 길을.

사실 지나간 발길로 닳은 건

두 길이 정말 비슷했다네.

 

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아직 밟히지 않는 낙엽에 덮여 있었네.

아, 나는 첫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놓았네!

그러나 길은 길로 이어져 있어

 

계속 가야 함을 알기에

다시 돌아올 수 있으리라 믿지는 않았네.

 

먼 먼 훗날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 쉬며 이렇게 말하리.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 -

나는 사람들이 덜 지나간 길 택했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