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살하지 않아야 하는가 <4>
할 게 너무 많다
세상엔 할 게 너무 많다. 진짜 많다.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은 인생이 재밌다는 데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맞다. 재밌다면 사람들이 왜 죽으려고 하겠나. 인생은 대체로 재미없는 게 사실이라 그 많은 사람들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다. 그런데 대체로 재미없는 인생에 잠시 볕이 들 수 있게 만드는, 재밌는 일들은 정말 많다. 나 한번만 믿어보라.
당장 핸드폰만 켜면 제 몸 하나 가누기 어려운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일들이 넘쳐난다. 큰일 했다 정보화 시대... 일단 진짜 아무것도 못하겠고 하기 싫고 그래서 나는 정말 쓰레기같다는 생각이 들면 만화를 보자. 카카오페이지, 네이버 시리즈, 등등... 다양한 작품들이 정말 많다. 처음엔 무료 공개된 작품을 둘러보다가, 5000원 정도만 충전해서 취향에 맞는 작품에 투자해보자. 나도 안다, 처음엔 웹툰에 돈 쓰는 게 아까울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게 하다보면 작가를 직접 응원해주고, 작품의 전개에 더 몰입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어찌저찌 나와 있는 걸 다 보고 나면 연재 중인 작품은 공개되는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일종의 생명연장술이다.
그렇게 삶에 대한 기대를 조금씩 늘려가는 거다. 처음엔 수동적인 일, 웹툰 읽기, 영화 보기 등등으로 시작한 다음엔 직접 몸을 움직이는 일로... 이렇게 나아가보면 얼마나 할 일이 더 많은지 모른다. 진짜 바빠서 미쳐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주의할 점은, 초기엔 뭐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죽을 고비를 만난 당신이라면 딱히 깊게 교류하는 사람이 없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당신 주변에 있다면 다행이지만 없을 확률이 더 크고, 당신이 정말 심각한 상태라면 관계가 당신이나 상대에게 몹시 버겁게 다가올 것이다. 너무 힘들어 상대에게 처절하게 도움을 요청해도, 바라보는 사람에게 당신은 크든 작든 부담이고, 그걸 당신이 눈치 채는 순간 당신은 더 비참해진다. 아닐 거라고 생각한 사람에게 그런 느낌을 받았을 때, 당신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다.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선 나중에 더 서술하겠으나, 여기서 분명히 할 점은 ‘혼자서’ 즐길 수 있는 무언가가 반드시 이 세상에 있다는 거다. 그리고 우리는 그 넓은 지평에 반의 반도 딛지 못하고 있다. 이걸 알고 있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크다. 삶에 대한 의지 자체가 달라진다. 나는 집에 오면 강아지가 있고, 일주일만에 웹툰이 나오고, 미드 새 시즌이 시작할 날이 다가오고, 이런 방벽들이 내 인생이 무너질 때도 가만히 서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이 믿음에 곧 의지하게 됐다.
나 하나 죽어도 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간다는 게, 죽기 직전 사람을 정말 비참하게 만든다. 근데 다르게 생각해보면 내가 아무리 무너져도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줄 무언가가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그걸 부여잡고 희망을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우리는 관계, 인타라망을 느낄 수 있다. 만화를 보는 게 즐거웠다면 반드시 돈을 내보자 100원이나마 내가 무엇에 영향을 끼쳤다는 감각이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의미를 느끼게 해준다. 100원을 냄으로서 당신은 그 만화의 동료가 된 셈이다. 너무 내 맘대로 만화만 이야기했는데 뭐 딴 것도 괜찮다. 하다못해 유튜브 선플이라도 남겨서 크리에이터가 감사하다고 말이라도 해주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시작이다. 돈도 안 들고.
찾아보면 할 게 정말 많다. 지쳐버린 우리네 영혼을 씻어주는 입욕제들이 널리고 널렸다. 음악 정말 안 좋아하는 나도 클래식 몇 개 찾아보면 음악가들의 천재성에 기함을 토하게 되고, 공놀이에 별 뜻을 못 두는 나도 방금 손흥민이 패널티 킥 찬 걸 보며 신나하고, 딱히 봉준호 감독 좋아하진 않는 나도 영화 한 편에 담긴 디테일 찾아가면서 재미를 느낀다. 그냥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는 거다. 재밌는 잡다구리들을 끌어 모으면서 사는 거다.
굳이 대단한 사람이 될 필요 있나. 대단한 사람 되면 골치만 아플 게 뻔한데. 하고 싶은 게 없는 게 젤 문제다. 하고 싶은 걸 찾다보면 당연히 돈이 필요하다는 걸 느끼고 그럼 의무감에라도 일을 하면서 또 하고 싶은 거에 열의도 다지고. 하고 싶은 것만 하다보면 그게 또 질린다. 일과 중에 참고 참다가 비로소 뭔가를 할 수 있을 때 그게 정말 가치 있는 행위가 된다. 그러니까 아무리 사소한 일이더라도, 하고 싶은 걸 찾는 게 급선무다. 그리고 나를 한번만 믿어줬으면 한다. 세상엔 하고 싶을만한 일들이 널렸다. 우리와 희미한 관계를 맺고 있는 창조적인 사람들 덕분이다.
하고 싶을만한 일을 찾는 건 2부에서 상세히 기술하겠다. 지금은 그냥 막연하게 하고 싶은 일이 분명 있을 거라고 믿자. 생각을 해보면 네이버에 재밌는 웹툰만 몇 개며 유튜브에 귀여운 동물 영상만 몇 개며, 도서관엔 재밌는 책이 몇 권이며, 원데이 클래스엔 무슨 세상 듣도보도 못한 취미들이 넘쳐난다. 그 중에 한 개는 당신 취향이겠지. 아니라고 굳게 믿는 것보다야 그 편이 낙관적이고 좋지 않나. 삶에 대한 희망도 생기고. 그니까 내 말 한번 믿어보자.
지금 스마트폰이든 노트북이든 내 글을 읽게 해준 기기를 그대로 켜둔 채 곰곰이 생각을 해보는 거다. 나는 평소에 뭘 좋아했나, 뭘 하고 싶었나. 그리고 망설이지 말고 검색창에 쳐보자. 그럼 자본주의 사회답게 쇼핑 항목이 뜰텐데, 과감하게 10만원 이하면 질러보는 거다. 그럼 돈이 아까워서라도 어느정도 그 취미를 마스터해보고 싶어지고, 그렇게 점점 부지런하게 살게 된다. 살아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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